잘 어울리는 공간, 잘 어울리는 글쓰기
글쓰기 작업에 좋은(혹은 좋아 보이는) 동네 카페를 발견했다. 집 근처 도로변에 있다. 걸어서 5~10분 거리. 이 거리를 근처라 해야 할지, 인근이라 불러야 할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어쨌든 비교적 최근에 생긴 이 카페는 한적한 동네에 있으므로 조용하다. 오픈했다는 소식을 건너 들은 적이 있었는데, 워낙 카페를 선호하지 않는 타입이라 이제야 왔다. 1층엔 빵집도 있어서 출출하다면 잠깐 내려가서 슈크림 빵을 사 들고 다시 올라오면 그만이다. 빵 중에서는 슈크림 빵이 제일 맛있다. 시내에 있는 시끌벅적한 곳과 다르게 동네 카페의 장점은 아늑하다는 것이다. 승용차에 시동을 걸지 않고 도보로 올 수 있다는 점도 빠질 수 없는 매력이다. 반면, 이성을 유혹하고 자신의 여유로움을 표출하고자 하는, 혈기 넘치는 청년들에게 한적한 동네는 그저 심심할 뿐이겠지.
가격은 동네 카페란 점을 고려하면 저렴한 편은 아니다. 아메리카노가 3,500원으로 평범한 수준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막 입’에다가 맛 평가에 일가견에 있는 미슐랭 가이드는 더욱 아니므로 커피 맛은 잘 모르겠다. 어제는 뉴욕 커피를, 오늘은 아메리카노를 시켜 먹으면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여기엔 기분 좋은 음악들이 나온다. 대체로 처음 들어보는 해외 가요들이다. 영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비트가 쿵작거리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시끄럽기만 하고 어쩜 이렇게 감정 없는 노래가 있을까 싶은 그런 노래들도 있다. 딱 카페다운 어쿠스틱, 컨트리풍의 음악이 주로 들린다.
오늘은 카페에서 글을 쓰기 위해 조금 일찍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다. 노트와 펜도 준비했다. 노트북과 충전기를 가방에 쑤셔 넣고 덜그럭거리며 카페까지 오려니 가방이 여간 무거운 게 아니었다. 요즘 가방에는 노트북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던데, 참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한다.
카페라는 곳은 노트북과 종이 노트, 책, 글이 참 잘 어울리는 장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노트북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10년에 프로그래밍을 위해 구매했던 애플(apple)사의 맥북 프로(MacBook Pro)라는 녀석이다. 연식이 오래 되도 너무 오래돼서 운영체제가 Mac OS X 10.6.8 스노우레퍼드고, 집 아이맥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앱을 사용할 수 없다. 아예 설치 자체를 못한다. 심지어 아래아한글이나 동기화가 가능한 글쓰기 앱들조차 쓸 수 없어서 pages를 실행해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치아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pages도 쓰다 보니 괜찮은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선명한 5K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보다가 일반 노트북 화면을 보려니까 텍스트가 깨져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시력 나쁜 할아버지처럼 글자 크기를 여러 번 키워야만 했다.
생각해보니 나의 두 번째 책인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블로그>의 절반 정도는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썼다. 지금은 그 카페가 망해서 없어졌다. 씨앗 글을 대체로 카페에서 집필한 이유는 집에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방 안은 사우나처럼 답답했고 아침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달궈지다가 오후에는 펄펄 끓는 뚝배기 내부와 같아졌다. 온몸의 모든 구멍을 활짝 열고 땀을 흘리다가 최고 속도의 선풍기에서도 용암 같은 바람이 내게로 향할 때, 나는 천국인 카페로 갔었다.
그때도 이 노트북이었지. 지금은 무척 느리고 실행되는 프로그램들도 거의 없어졌지만, 나의 젊을 때를 함께 풍미했던 녀석이다. 이렇게 산문을 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지금은 사정이 좀 나아져서 집에 에어컨도 있고, 보일러 난방도 있고, 차도 있고 한데, 정작 열정은 그때 한참 못 미친다. 환경이 나아졌는데 생산성이 떨어지니 환경 탓을 할 수도 없고 그저 내가 나태하다는 사실만 거울처럼 알게 될 뿐이다. 그래서 환경을 바꿔보고자 다시 카페를 찾았다. 집에서 편하게 써도 되는 글이란 걸 카페까지 와서 느려터진 노트북으로 저렴하지 않은 커피를 마셔가며 쓴다 하니 친구놈이 돈 아깝다며 잔소리를 한다. 그래도 산문 한편에 4,000원 정도라면 나는 투자할 의향이 있다.
검색을 좀 해보니 카페에서 글을 썼던 작가들이 많다. 헤밍웨이도 그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고 나도 그들이 아니므로, 내가 카페에서 글이란 걸 잘 쓸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카페의 원두를 가는 소리, 다른 손님이 나누는 담소, 음악, 창밖으로 보이는 차들의 간헐적인 경적…. 화이트 노이즈라 불리는 이 소음은 나를 백색 바탕의 검은색 커서 앞으로 이끈다. 집에서는 금세 포기해버릴 작업도 여기에서는 일단 붙잡고 있을 수는 있다. 딱히 글을 쓰지 않더라도 일단 바라보고, 생각하고, 붙어있고 하는 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다.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글쓰기 작업 중의 일부니까.
아늑한 조명과 고즈넉한 분위기, 원목 느낌의 책상과 의자, 심심할 때면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 집중하게 하는 주변의 분위기가 만족스럽다. 집과 사무실의 중간쯤에 있는 곳. 앞으로 여기에 자주 와서 새로운 마음으로 마음껏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