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보다 가치 있는 일

200만 원 짜리 컴퓨터를 기부하면서...

by 남시언

사용하던 iMac을 기증했다. 무선키보드와 무선마우스 제품을 넣은 풀세트와 MAC OS X 바이블 도서, 그리고 내 저서 3권을 함께 전달했다. 원가가 200만 원 정도고 중고로 팔면 5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는 제품인데 돈 대신 기증을 선택한 이유는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돈이 남아돌아서가 절대 아니다.). 처음에는 일반 가정에 기부하려고 했었다. PC 특성상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정도 되는 아동이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글쓰기나 디자인, 앱 개발 같은 프로그래밍이라든지 그 외 어떤 것이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생산적인 취미를 가질 수 있다면, 형편이 어려운 학생도 꿈을 갖고 희망찬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iMac 제품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괜찮은 컴퓨터다(일단 돌아가는 게임이 윈도즈에 비해 많이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게임이 아닌 뭔가를 하게 된다).

이번 기증을 준비하면서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도움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알아보기에는 한계가 명확했고 SNS나 블로그 같은 장소에 공개적으로 알아봐 줄 것을 이야기하면, 관련 없는 사람이 받거나 기증받는 아동의 형편이 공개될 수 있는 등의 문제가 염려된 까닭이다. 또한, 평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자이기도 하고 내 블로그는 공식 후원 온라인 매체이기도 한데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재단의 서포터즈까지 하고 있으므로 담당자와의 이야기가 수월했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 있는 아동에게 직접 기증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몇 달에 걸쳐 협의한 끝에 결국 사회복지관에 기증했다. 복지관 측에서는 전달식이라는 걸 하자고 했는데 정중히 사양했다.


IMG_9443.JPG


이번에 컴퓨터를 기증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현금이 아닌 현물의 경우 기부하는 과정이 꽤 까다롭다는 점이다. 요즘은 저소득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컴퓨터 한 대쯤은 있는 데다가 인터넷 요금 할인 혜택과 노후되면 교체해주는 업그레이드 프로그램까지 있다고 한다. 최신식까지는 아닐지라도 사용하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으므로 구태여 PC를 갈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 친구는 컴퓨터를 기증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차라리 판매해서 돈을 버는 게 낫지 않냐고 얘기했지만 나는 당장의 돈보다 가치 있는 큰 그림을 찾고자 했다. 제 잇속 챙기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이번의 나는 좀 달랐다. 나는 PC를 받은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신이 만든 작품(그것이 그림이든 글이든 디자인이든 제품이든)을 당당히 선보이는 상상을 해봤다. 이때의 감동은 50만 원보다 훨씬 더 가치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기증한 컴퓨터는 이제 내 손을 떠났고 그 행방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상상에 의존하는 행복감을 맛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중이다.

어쨌거나 이번 기증을 진행하면서 나는 큰 보람을 느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뿌듯함은 가질 수 있다. 나는 가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된 나를 상상해본다. 좋은 차, 좋은 집, 편안한 시간들 보다도 남들에 자랑하고 그들이 나를 우러러보는 그때의 상상 속 내 모습은 속물 같다. 부자가 된 뒤에 내가 하는 일이라곤 지금처럼 글을 쓰거나 여행하는 일이 전부일 것 같은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차이점이라곤 통장 잔고와 나이뿐이고 다른 사람들의 나쁜 시선만 잘 견디면 되는 것이다. 종일 폐지를 주운 다음 소주 한 병 사 먹으면 끝나는 어느 어르신에 비해 지금의 나 역시 속물 같다. 적은 돈이지만 어려운 이웃에 나누는 건 어쩌면 속물 같은 나 자신에 주는 약간의 위안일지도 모른다. 가난하단 이유로 형편없는 학창시절을 보냈던 과거의 나를 닮은 누군가에게 희망이란걸 줄 수 있다면, 수십만원의 값어치는 오히려 부족하다.

나는 기부 문화를 남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내 가치관을 반영한다. 다른 사람에겐 또 다른 가치관이 있다. 누구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누구는 적금 없는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사람이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복지관 홈페이지의 ‘후원금품에 대한 수입 및 사용내역’을 보면 민간단체와 개인이 기부하는 현금만 해도 연간 억 단위가 넘는다.

돈이 잔인한 이유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용기를 갖고 이 속박에서 스스로 벗어날 때, 예컨대 자발적 가난뱅이를 자처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꿈을 펼치면서 도전해보길 원한다. 이번 컴퓨터 기증은 이러한 생각의 실천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동네 카페에서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