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함의 참 모습

그동안 인정하기 싫어 회피하고 도망치던

by 남시언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루에 글을 여러 편 썼다. 그땐 회전밖에 안 되는 고장 난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뜨겁게 버티고 너무 더워서 찬물 샤워를 몇 번씩이나 해야 했다. 겨울에는 0에 가까울 정도로 온도가 떨어져서 양말을 두 겹이나 신어야 했고 손발은 매년 동상에 걸렸지만 입김으로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글을 썼다. 거북이처럼 목을 죽 빼야만 모든 화면을 볼 수 있는 13인치 노트북 하나로도 많은 단어를 타이핑했고 거의 종일 글을 써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장문의 블로그 글을 여러 개 작성하고 금세 글감이 떨어져서 아침마다 주제를 생각하는 게 일과였다. 관심 있는 모든 내용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하면서 지적 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을 맛보는 나날이었다.

지금은 찬 바람이 빵빵하게 나오는 에어컨도 있고 틀자마자 작동하는 보일러도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환경이다. 전기세나 기름값이 조금 많이 나오지만,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덜 춥다. 27인치 5K 화질의 아이맥과 기계식 키보드가 있고, 개인용 서버인 NAS까지 있어서 그때의 상황과는 차원이 다른 공간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하루에 글 한 편 쓰는 것도 벅차다. 소재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 내 todolist에는 써야 할 글 목록들과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어서 골라잡아 하나씩 처리하기만 하면 되는데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아 허무하게 보내는 날이 잦다. 그렇다고 남는 시간에 책을 열심히 읽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그 덥고 추운 날들에도 1년에 100권 정도는 읽어나갔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 권 읽는 것도 까다롭게 느껴진다. 모든 생활의 진도가 느리고 꽉 막힌 고속도로마냥 답답하다.

어쩌면 내가 나태해진 이유는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이를 먹어서 체력이 부족한 것인지, 열정이란 게 식어버린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렇게 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타성이나 슬럼프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보다도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이 온 정신을 휘어잡고 놓아주질 않는 느낌이다.

과거에는 뭣 모르고 돌진하듯 글을 썼다. 한 곳에 조준을 맞춘 송곳 같았다. 몇 년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는지 이제는 여기저기에 쓸데없이 생각만 많은 방망이 같다.

일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다는 아니다. 때로는 쓸데없어 보이는 다른 것과 연결하여 창의적으로 해결하거나 색다른 방식을 시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콘텐츠를 만들고 크리에이터로서 다양한 내용을 다뤄야 하는 입장이기 이전에 글을 쓰는 작가로 사는 삶에 충실해야 할 테지만, 하루를 알차게 보내면서 보람찬 일기를 쓸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책임감 없이 닥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속으로 경멸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고 있음에 씁쓸한 맛을 본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어떻게 하루에 한 편 이상의 글을 썼는지 참 의아하다. 물론 그때의 글은 지금보다는 조악하고 거칠지만, 내용은 풍성하고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있어서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는 된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계속해서 쓰지 않으므로 계속해서 쌓여만가고 결국엔 시기가 지나버린 쓰레기 소재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바쁘게 열심히 살아간다고 착각하며 살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 쓸모없는 하루의 연속일 뿐이었다. 이 사실은 그동안 인정하기 싫어 회피하고 도망치던 나태함의 참모습이고 내가 수긍해야 할 단 하나의 계시였다. 매일 ‘내일은 정말 힘차게 글을 써야지’라고 다짐했는데 이 다짐을 매일 했다는 건 ‘오늘 정말 힘차게 글을 쓰지 않았다’는 확인사살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 역시 나 자신인걸. 그래서 오늘도 다짐하는 하루를 보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돈 보다 가치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