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만이 글을 쓰지 않는다

문자는 정신을 강타한다

by 남시언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다. 가식의 껍데기를 벗고 투명한 자신을 유리처럼 내보여야 한다. 펜이 칼보다 강한 시대. 칼은 신체를 위협하지만, 문자는 정신을 강타한다. 과거 소설가나 작가, 기자들의 전유물이었던 글은 이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자원이다. 바보들만이 글을 쓰지 않는다. 너무 암울해서 정신병에 걸리거나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되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고 위로를 받는 사람도 있다. 삐뚤어진 글도 누군가에겐 희망의 편지가 된다.

내 강의를 듣거나 글을 구독하는 이들은 “저도 작가님처럼 글을 잘 쓰고 싶어요!”라는 공통된 이야기를 한다. 나는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애초에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본인이 할 말이 있으면 자연스레 글을 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글을 못 쓸 터. 요즘 젊은이들은 페이스북에 올릴 한 문장을 작성하는데도 두려움을 갖는다. 그만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일 년 동안 책 한 권 읽는 법이 없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인용하고 공유하면서 마치 자신의 글인 양 포장하는 건 쉬워도, 마음을 담은 행간에는 관심이 없다.

해산물을 먹지 않는 사람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된다. 마찬가지로 글을 안 쓰는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다. 약간의 글쓰기만 할 수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대폭 늘어난다. 왜 자신의 가능성을 묶어두는가? 고급어휘나 어려운 단어, 한자를 쓰거나 국어사전에서도 겨우 찾을만한 문구를 쓸 필요는 없다. 그저 친구와 대화하듯, 메신저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듯 쓰면 된다. 사람들에게 글을 써보라고 하면 지레 겁을 먹고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처럼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압도적인 첫 문장을 쓰려 한다. 칼끝보다 날카로운 문장을 쓴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건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현재를 기록하는 일이지, 노벨문학상을 타는 게 아니다.

피사체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글은 곧 자신이 된다. 글쓰기 훈련이 돼 있지 않으면 생각을 정리하는데 곤란을 겪는다. 일기 한 편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사람에겐 ‘대화가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리 있게 말을 하지 못하면 의사소통은 엉망이 된다.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어떻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글 꽤나 써본 사람들과의 대화는 즐겁고 유쾌하다. ‘코드가 맞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실과 바늘처럼 글과 말은 뗄 수 없다.

진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가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말은 해도 닳지 않고 글을 써도 고갈되지 않는다. 상대방은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들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떠올릴 수 있지만, 다이아몬드 반지는 서랍장에 처박혀서 먼지만 쌓여갈 뿐이다. 초고액자산가가 아니라면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루에 한 개씩 선물할 순 없다. 하지만 글, 편지, 대화, 말은 언제든지 선물할 수 있다.

주변에서 자기 할 말만 주야장천 늘어놓으면서 형편없는 이야기나 해대는 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대체로 글과는 동떨어진 삶을 산다. 글쓰기의 기본은 경청과 읽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생각도 쓸 수 있다. 아무것도 보고 듣고 배우지 않으면 멍청한 삶을 살게 된다. 바보들만이 글을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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