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결코 짧지 않다

짧지만 몰입하는 시점

by 남시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동트기 직전의 새벽이다. 그 시원한 공기와 푸른 경치를 보고있으면 오늘 하루를 맞이한 것에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직장인일 때는 7시 반쯤에 일어났는데 매우 피곤했고 잠이 고팠다. 요즘에는 5시만되면 절로 눈이 떠지고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믹스커피 한 잔을 빠르게 타서 손에 들고 창 밖으로 나가면 세상이 고요하다. 모든게 시작되길 기다리는 이 순간에 나는 군자가 되어 청산유수를 읖조린다. 모두가 단잠에 빠져있을거라 착각하기 쉬운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뭔가를 하고있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직장인도 보이고 아래위로 등산복을 빼입은 어르신은 마치 ‘오베’처럼 동네를 산책한다. 빗자루로 집 앞을 청소하는 할머니도 있고, 마당에 심은 작물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는 아저씨도 보인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푸르던 하늘은 점점 바뀐다. 요즘처럼 안개가 지독하게 끼는 날에는(안동은 특히 안개가 많이 낀다. 나는 이 안개를 반드시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한다고 본다), 형광등을 켠 듯 갑자기 밝아지는게 아쉽지만, 운이 좋다면 일출을 볼 수도 있다. 붉게 물든 찰나의 세상 앞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이도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된다.

‘남들이 8시에 출근하니까 나도 그때 출근해야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들처럼 해서는 남들보다 뒤쳐질 수 밖에 없다. ‘내 인생을 왜이럴까?’라고 하소연하고 무언가를 못한 이유에 댈 핑계를 고민할 시간에 자신이 꿈꾸던 뭔가를 하는게 좋다. 하루에 10분만 일찍 일어나면 1년뒤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새벽 5시에 카톡을 보내는 나에게 신기하다는 답장이 3시간 뒤에 도착한다. 나는 최근 몇 년간 6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 사실 매우 피곤하다. 그래도 할건 해야한다. 성실함과 부지런함만이 자기계발의 속도를 높이는 비결이다. 내 아이폰엔 알람이 없고 깨워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습관이 나를 깨운다. 태생이 잠이 없는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은데, 마음먹고 자라고하면 24시간도 잘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생산성 측면에서 접근해보면,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짧지만 몰입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하루에 1시간을 일해도 확실하게 하는게 낫다. 나에게 아침 직전 새벽은 가장 창의적이고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황금시간대다. 중요한 일 대부분을 이때 처리한다. 밤새 청소된 두뇌는 아이디어를 채우기에도 완벽하다. 책을 읽기에도 좋고 기사를 읽으면서 세상을 공부하기에도 괜찮은 타이밍이다. 감수성보다는 이성적이고 명확하게 계산된 생각들이 떠오르는 시점이다.

나는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운영하면서 잡지에 기고할 글을 쓰고 칼럼을 적는다. 웹툰 스토리를 짜고 시나리오를 구상하기도하며 여행을 다니면서 찍어온 사진과 동영상을 고르고 편집한다. 클라이언트들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기사를 보거나 가끔 책도 읽는다. Things에 기록된 Todolist를 살펴보고 이메일 확인과 RSS 구독목록을 검토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라디오에 출연하고 있어서 원고도 써야하고 온갖 대외활동 미션들도 처리해야한다. 강의 준비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여러가지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는 것도 꼭 해야할 일이다. 탁상달력에는 빼곡하게 일정이 잡혀있어서 시간을 잘 쪼개야한다. 저녁에는 좋은 사람들과 술 한잔 안할 수 없다. 나는 이 모든것들을 잘 통제하고 있고 이럼에도 시간이 남아서 뭐를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하루는 이렇게도 길다.

새벽 거리를 거닐어보면 자신이 얼마나 게으르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퇴근시간대에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보면 말끔한 정장차림의 전문가들이 하루를 어떻게 마감하는지 볼 수 있다. 안보이는 어딘가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빼곡하게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 대중들은 그들의 결과물만 보면서 ‘정말 대단해!’라며 영혼없는 대답과 시기질투를 일삼지만, 정작 자신의 생활패턴에는 관심이 없다.

너무 오래도록 일하는건 나쁜 생활이다. 10시간을 일해도 사실 2시간 일한것과 결과물에서 별 차이가 안난다. 남는 시간에는 일 외에도 할 수 있는게 정말 많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은 하루가 길다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루에도 무척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하루는 결코 짧지 않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내일, 한달 뒤, 일년 뒤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가 결정된다. 푸념만 늘어놓고 위로만 받아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때로는 따끔한 회초리와 몸에 쓴 약을 먹는 기분으로 억지로라도 자신을 바꿔볼 때 세계관이 뒤틀리면서 전혀 다른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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