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흩날림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망각

by 남시언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건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 망각일 때가 잦다. 슬프고 아픈 기억을 잊는게 좋은일이냐하면 꼭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싶다. 어쨌거나 시간은 흐르고 뭔가를 계속 잊어간다. 머릿속에 빈공간이 없다는건 슬픈 일이다. 꽉 찬 책장에 옛날 책을 빼내고 새 책을 넣듯, 기억도 옛 것을 빼버려야 새 것을 넣을 수 있다. 그래서 여러가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생각의 깊이가 얕다. 의도적으로 호기심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두뇌라는 책장은 금세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다.


나는 흩날리는 기억을 붙잡으려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글쟁이는 운명처럼 글을 쓰게된다. 이 글은 자체로 기록이고 기억이다. 그 누구도(심지어 자신조차도)읽지 않는 글을 쓰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면, 흩날리는 기억을 담아두는 소중한 상자라고 답하겠다.


봄이 되면 하늘은 맑고 구름은 솜사탕처럼 둥실거린다. 꽃망울이 터지고 벚꽃이 내 기억처럼 흩날린다. 꽃 나무 아래에 서면, 매년 보는 꽃이 왜 이토록 새로운지 고민하게된다. 우리는 1년 전을 잊었고, 내년이면 오늘을 잊을 것이다.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기억도 마음대로 못하는 자신을 보면 무력감을 느낀다. 기억이란건 뭉터기로 사라지는게 아니라 쥐가 파먹은 과일처럼 서서히, 조금씩, 조심스럽게 바깥에서부터 갈려나간다. 우리의 오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곧 흩날릴 기억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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