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게 자랑이 아니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독서를 위해

by 남시언

사람들은 종종 내게 이렇게 물어온다.

"한 달에 책 몇 권 읽으세요?"

"독서 습관을 기르려고 하는데 추천 좀 해주세요."

"A라는 책 읽어보셨어요? 괜찮나요?"

이 모든 질문이 허무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걸 깨닫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20대 후반에 작가로 데뷔하면서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책도 많이 읽었고 블로그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는 책 표지와 서평이 넘쳐났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았으므로 심리적인 우위에 있다고 느꼈다.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고 당신들은 그렇지않으니 '내가 좀 더 똑똑할껄?'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심취했다.


당시엔 1년에 50권에서 10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나는 다른사람에게 자랑할 목적으로,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자신감을 표출할 심산으로 '독서 테이블'이란걸 만들어서 스프레드 시트화한 다음 독서 목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책 제목과 읽기 시작할 날짜, 완독한 날짜, 그리고 서평과 SNS에 게시물을 올렸는지에 대한 체크버튼 등 필요한 모든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테이블이었다.


어느샌가 나는 테이블을 관리할 목적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자랑할 목적으로 힘겹게 독서를 했다. 관심있는 분야의 책 보다는 남들에게 자랑해도 좋을법한 어려운 책들, 유명한 책들을 읽어야만했고 별 관심도 없는 철학책이나 클래식으로 칭송받는 책들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초심을 잃은 나는 뭔가를 배우고 공부하기 위해 독서를 했던게 아니었다. 나중에 문득 되돌아보니 '책을 읽기 위해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게 허망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몇 년간 관리하던 독서 테이블부터 완전 삭제했다. 이때부터 나는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처음 독서를 하며 맛봤던 순수한 배움의 기쁨을 다시 찾았다.


책 읽는게 결코 자랑이 아니다. 순수한 배움의 눈길로 책을 마주할 때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다. 나는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마음껏 고르고 그걸 읽으면서 재미를 느낀다. 노래를 배우면 하루종일 읖조리는 유치원생처럼 책 내용이 계속 생각난다. 재밌다. 내 행동이 바뀌고 시선이 달라진다. 세상을 바라볼 때 이해도가 깊어지고 어떤 사건에 대해 여러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좀 더 이성적이면서도 한편으론 감성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비슷한 사례들과 지금 현재를 비교해볼 수 있게되어 결과적으로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확률도 높아진다.


독서를 꾸준히 하려면 독서할 때의 즐거움을 맛봐야한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보여주기위한 독서는 작심삼일이 될 뿐이다. 나는 이제 내가 1년에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없다. 관리를 안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냥 읽는다. 며칠이 지나면 잊어버릴 내용들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색다른 세상을 마주할 때의 기쁨은 다른것과 바꾸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순수하게 접근했던 독서로 여러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독서량이 늘었고 독서 습관도 안정적으로 다시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소설, 철학, 자기계발서, 심리학, 두뇌과학 및 마케팅, 실용서 등 가리지않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다음 한꺼번에 구매한다. 그런 다음 관심가는 책부터 읽어나간다. 단 한번도 펼치지 않은 책들을 훑어보면서 '오늘은 어떤 책을 읽어볼까?'라고 행복하게 고민한다.


이런저런 책들이 너무 많은 까닭에 때로는 흥미로운 제목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만큼 재미없는 책도 있다. 나는 책을 한 번 펼치면 끝까지 읽는 편이지만, 어떤 책은 중간쯤에서 그만 읽고 방구석에 쳐박아버릴때도 있다. 나는 더 이상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책을 읽거나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읽지 않으므로 모든 책을 꼭 끝까지 읽어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독서는 재밌어야하고 즐거워야하며 단 한 줄의 내용이라도 뭔가를 배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게 내 의견이다.


내가 처음 책을 써야겠다고, 그리고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어떤 얇은 책에서 읽었던 '당신도 책을 쓸 수 있다'는 단 한 문장이었다. 이때처럼 백지 상태의 순수한 독서야말로 진정한 책 읽기라 하겠다.


요즘 나는 다시 독서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글쓰기와 독서를 멀리하고 일만 하며 살았더니 입 안에 가시가 돋힌듯 불편했다. 다시 잡은 책들을 읽어가면서 내가 느꼈던 독서의 최대 장점은 바로 '글을 쓰게 만든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나면 반드시 글이 쓰고싶어진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무만 심지말고 숲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