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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14. 2024

과대평가된 우연과 일상 - 인스타그램과 브런치


필름사진이라는 해시태그로 검색을 하다 보면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매번 보여주는 사진들과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분명 댓글과 좋아요나 기타 공유 활동이 활발한 그런 사진들이 보이는 것일 텐데 

작금의 인스타 사진들에서 보이는 트렌드를 보면 


여전히 사진의 우연성이 매우 과대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이란 게 발명된 지 200년가량 지났지만 아직도 우연성과 

우연성에 이르게 만든 여러 조건들을 적극 부각하는 그런 작업들이 

사진의 유일무이한 재미이자 미덕인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에게 많은 동의를 받고 있다는 생각... 


그 우연성이란 것은 하필 그 사건이 벌어질 때, 우연히 사진가가 거기 있었고, 그걸 기록했다는 의미에서 오는데, 


사건의 일회성과 

이미지를 캡처하는 순간적인 과정의 숙련도가 

이런 우연성을 좌우하는 척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연성은 반복을 통한 재현의 기술적인 완성도를 의미할 때가 많다. 

관찰자는 이미 그러한 일회성이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 경험했고, 그것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고민할 것이 분명하다.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우연함을 재현하기 위한 단계적 계획을 수립하며 

결과물들을 도출하여 최적의 방법론에 이르게 되고, 그걸 깔끔하게 가공해서 이 모든 과정을 누구나 보란 듯 공유하며 행복해한다. 발견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은 덤이며, 그런 순간들이 계속 이어질 테니 여러분들이 구독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 당연히 생각한다. 


작금의 인스타그램에선 이렇게 깔끔한 우연성들이 진정한 재미로 여겨지는 듯하다. 


사람들은 그런 트릭이나 편집 방식에 점점 익숙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고 또 퍼트리고 

짧은 순간의 시선이 소비되며 그것이 SNS의 주요한 광고 촉발 요소가 되며,

우리는 그 알고리즘의 순박한 노동자가 되어  SNS 시스템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해 

과업을 이룩한다. 좋아요와 댓글의 숫자가 빈약하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또 공부하기 위해서 

뭔가 근사한 것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집게손가락으로 화면에 쓸어 올린다. 



브런치라는 포맷에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여러 글들을 스쳐 넘겨보면서 드는 생각은 


인스타그램이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사진 공유에 혈안이 되어 있다면,

브런치는 뭐랄까, 

'나'만 있는 글쓰기, 일기, 직업적인 사념들, 일상이라는 것들이 매우 '과대포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스타에서 사진으로 미처 자랑하지 못한 

소소하지만 그래도 공감해 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맹신으로 

모두가 '작가'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내 일상을, 가식 없는 순박한 관찰을 

피해의식과 망상과 우울한 사정을 주절주절 거리고 있다는 생각... 


인스타그램에서는 '항상 누군가 사진 속 나를 보고 있다면', 

브런치에서는 '항상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있다면'이라는 환상이 

내가 올리는 사진과 글쓰기에 당연시 여겨진다 


브라우저를 켜서 글쓰기 버튼을 눌렀을 뿐임에도 출판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글쓰기, 

누군가로부터 검열로부터도 자유롭지만 그 누군가가 내 글을 종이 위에 활자화시켜줄 수 있다는 그런 환상은 강박처럼 따라온다. 


그 결과 글쓰기의 자율성은 심각한 노출증에 사로잡혀 

서랍 속에 차마 들어가 있기 아까운 무언가로 

내 보잘 것없는 몸매가 당연히 드러내도 좋을 울림을 가질 만한 무언가로 변한다.  


각자가 유일무이한 인생의 관찰자로서 자신의 일상을 인상적인 제스처로 남기고 

자신의 삼시 세 끼를 진열하며 평가를 받고, 발열로 꺼질때까지 영상을 저장하고,  

모두가 소비재의 어필리에이터가 되어 링크를 생산하고, 댓글을 남기며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착취하며 가공된 사진과 영상들 그리고 글들을 양산하는 이 가상들은 음험한 자발성으로 가득하지만, 

문득 '나'라는 것을 '가상의 나'로 바꾸지 못하고는 견뎌낼 수 없는 자본주의의 과업을 스스로 완성하는 중이란 생각도 든다. 


상업화된 연민의 집합소 

동정과 공감이 스토리텔링의 확고한 요소이자 

강력한 트래픽의 필수조건인 세계. 

우리가 꿈꾸던 자아실현과 성찰이란 SNS세상에 한 움큼 노이즈를 던져주지 않고선,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거짓 공유하기에 의존하지 않고선 

절대 닿을 수 없는 것인가? 


사진-글쓰기 같은 기본적인 표현 도구들이 

막강한 무기가 되어 만들어진 '나'들이 오늘도 무수히 뒤를 잇는다. 


'나' 다음의 '나'는 같으면서도 또 새로운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과거의 '나'는 조금 아니었던 것 같아서, 

오늘 '나'는 새로운 '나'라고, 

'내가 되라'고 '나'를 세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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