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스포일러 후기

새로운 박찬욱의 스타일과 노고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보았다

완전 만족스럽다곤 할 수 없지만 상당히 즐겁게 봤던 2시간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중간 중간 웃음이 터져서 실실거리기도 했다는 뜻이다


원작 소설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액스>를 오래전에 읽었기 때문에 나는 박찬욱이 이병헌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게, 경쟁자들을 없애는 메마른 살인장면의 비장함 같은 것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왜냐면 원작에서는 가족의 중산층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감정 없고 계획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의 회색빛 도는 정서와 후회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지극히 이성적인 캐릭터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미 가득한 첫 바비큐씬에서 이병헌이 갑자기 나자빠지는 장면에서부터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는데 그것은 이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의 기법을 낸 종국적인 코미디였다는 사실!이라는 것


일단 장르가 코미디라는 점을 알고 나니 박찬욱 영화에서 내가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과잉된 미장센이나 배우들의 의상이나 디테일들이 그 나름 효과적이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


실직 후 재취업을 통해 기존의 삶의 편리함과 안정감으로 돌아가고픈 그 욕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숭고한? 생존 본능의 또 다른 모습인바

박찬욱 감독이 거의 최초로 그려내는 정상적인 어떤 가족의 초상화도 보편성을 띄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가족이 전체상으로 그의 영화에 등장한 경우도 없지 않나?)


손예진과 아들 그리고 딸은 각각 아버지의 위기에 비견되는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고 이것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전개를 영화 속에 집어넣은 것도 어느 정도 완성도를 높였다는 생각 한다 (손예진이 당연히 이병헌을 떠날 것이라 생각했던 관객은 나뿐이었나? 모두 21세기 비정하고 차가운 가족상에 절여진 것일까?)


제목 어쩔 수 없다에 주목하면

우리는 이병헌이 이성민과 염혜란과의 소풍장면에서 엿 들었던 대사를 자기 생각인 양 되풀이하고 차승원에겐 자신 같은 딸이 있으며 박휘순에겐 나름의 고통이 있었음을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기에

자신이 죽일 예정인 자들과 자신의 관계는 마땅히 죽여야 할 적이 아니라 연대해야 할 전우들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거기에 더해 감독은 그들이 죽는 장면에서 비정한 처단이 아닌 실수와 어설픔의 결합으로 미필적 고의처럼 느껴지게 연출하였다(온실에 가빠천을 깔고 전기톱 소리를 들었을 때 드디어 왕년의 잔인한 박찬욱이 돌아왔구나 생각했지만 실상은 고뇌와 고통으로 뭉그러진 인체 왜곡이었으니 머리를 탁하고 맞아버린 느낌! 이씬을 완성하기 위해 이병헌이 분재에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정했을까?)이런 어설픔과 실수연발을 마지막 합격 면접처럼 어설프게 하지만 완벽하게 소화해 낸 이병헌 배우에게 박수를!!


한편 이성민의 서사와 주변인물에게 들인 시간에 비해 차승원편의 이야기들이 조금 부족했던 점이 아쉽고


박휘순이 이병헌과 합을 맞춘 장면에서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며 시선을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영화가 끝나고 그의 캐릭터가 기억이 남지는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오달수 옆에서 연기한 신참 형사와 이병헌의 동네 친구로 나오는 건달스런 경찰을 연기한 배우들이 각자 캐릭터를 잘 살려줘서 발견의 기쁨이 있었다


어쩔수가없다 평점은 10점 만점에 7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