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늑대> 또는 헝가리 바텐더에게 던지는 한숨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라는 긴 성을 가진 소설가에게 돌아갔다. 나는 여성 작가는 아닐 것이고 아마도 살만 루시디가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근 소설 <나이프>를 읽어보면 문학을 위해 칼빵까지 당하신 노 작가에게 이 정도 훈장은 적절할 것이란 생각에) 하지만. 알마라는 출판사에서 끈질기게 신간을 내었던 발음하기도 어려운 라슬로의 수상은 다소 놀라웠다는 생각. 일단 그의 대표작은 당연히 읽지도 못했고, 기억나는 것은 그의 소설 중 그나마 얇은! <마지막 늑대>라는 120페이지 분량의 중편이었는데, 이 작가의 문체는 일단 지독한 만연체로, 쉼표만 있을 뿐, 마침표가 없다는 포스트모던작가 특유의 특징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화자를 가정하고는 있지만, 묘사와 묘사 속의 등장인물과 묘사 속 등장인물이 말을 거는 상대방의 대사와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과, 화자가 이동하는 동선과, 공간 속에서 부딪히는 감상이 모조리 쉼표만으로 구분되어 진술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건이라고도 할 수 없고, 사유의 흐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진행형의 문장들의 단속된 흐름이, 화자의 것인지, 등장인물의 것인지, 이 대사가 과연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그가 지금 어디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요런, 속독과 리드미컬한 문장의 경쾌한 독서를 지향하는 영미문학의 간결한 문체에 익숙한 나 같은 독자라면, 거의 한 페이지만 죽 훑어보다가, 바로 책장을 덮고, “음 이건 좀 나중에 읽어도 되지 않을까… ” 속단하게 만들 확률이 130프로에 다다른다는 필멸의 사실이 그의 픽션을 읽을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허무함과 모멸감의 대환장 콜라보와 곧장 뒤따르게 되는데,




우리가 독서를 하게 되는 중대한 이유는 아무래도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의 픽션적 재미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기 때문에, 라슬로 같은 비운의 작가는 책장 우선순위에서도 점점 뒤로 밀려지게 될 것이며, 나 또한 이 작가의 책의 판매 추이 역시 한 달 정도 노벨상 특수 기간이 지나면 재빨리 사그라들 것이란 생각을 해보는데, 그럼에도 <마지막 늑대>는 라슬로의 중요한 문체적 특징은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그나마 웃긴 ‘블랙 코미디’ 형식의 산문이라, 라슬로 입문으로 적절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게 되고, 줄거리는 대략, 오래전 작가적 혹은 작가적 글쓰기에서 벗어난, 독일의 어느 거리 중앙로의 허름한 싸구려 선술집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던 작가인지 철학자인지 모를 남자는 자신과 같은 동향의 헝가리 출신 바텐더에게, 이런 참을 수 없이 우울한 상황에 대한 푸념을 던지고, 바텐더는 그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직업적 호의 때문에 그의 말에 적절하진 않더라도,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추임새를 넣으면서 남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데, 그 대화 속에서 남자는 스페인의 어느 지역에 초대를 받게 되었고, 그가 수락해서 도착한 곳에서는 자신이 그 지역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부여받은 일종의 기행문 같은 종류의 글쓰기에 목을 매게 되는데, 그는 자신이 언젠가 알고 있거나, 인용했다고 생각했던 과거 자신이 썼던 글 속의 기사의 출처를 탐색하다가 그 지방에서 마지막 늑대를 ‘스러지게’했던 사람에 대한 추적을 자신의 동선에 함께하는 운전수와 통역사와 동행하면서, 그들은 마치 그 순간에 함께 했던 것처럼 이들의 사연 속에 증인이 되면서 마지막 늑대의 ‘스러짐’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지극히 이성적인 어떤 상황에서, 곧장 한계적인 상황의 관찰들에 집중시킴으로써, 독자는 한편으로 자신의 경험담-목격담을 바텐더에게 말해주는 화자의 한심하고도 진위를 알 수 없는 투정과, 경험담-목격담 내에 자리한 지극히 시적이고 비장함이 넘치는 대자연의 독특한 증거로서 늑대라는 상징에 골몰하게 되고, 결론에서 우리는 지독한 허무와 마주치게 되는데, 그것은 뭐랄까, 이 모든 경험과 목격자의 비장함과, 기묘한 추적담의 끝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보통의 카타르시스나, 문제의 해결에서 오는 개운함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뭔가 뒤가 구리면서, 이 소설의 앞으로 되돌아가면, 우리는 이것이 이국적인 경험이 아니었고, 지극히 끈적한 현실의 반복과 그 권태스러운 현실의 텁텁한 쓴 맛만이 입 안에 남게 되고, 도대체 마지막 늑대란 우리의 씁쓸한 글쓰기가 절대로 살려낼 수도 죽일 수도 없는, 지금과 과거에도 미래에도 영원히 살아 있을 음침하고도 은밀한 진실의 또 다른 외양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고 할까?



요런 묘한 뒷맛이 <마지막 늑대>라면,

이 책의 또 다른 단편인 헤르만? 관리인? 같은 경우는 두 장의 챕터로 나뉜 글로, 한 편에서 내적 동기와 파멸을 다루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이 사건의 전개와 마지막에 겹치는 전혀 다른 인물들의 순간을 담고 있는데, 끝이 기억나지 않는데, ‘마지막 늑대’만큼의 큰 인상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하튼 라슬로의 책을 시간이 날 때 읽어보려 노력은 해보겠지만 순서상 아마도 한 참 뒤로 밀려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