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버라 리비의 <모든 것을 본 남자>를 읽었다.
나는 이 작가의 <살림 비용>이란 책을 읽었다는 것을 기억했지만 그 책 내용에 대해선 기억나는 것이 없다.
반면 <모든 것을 본 남자>는 조금 새로웠다.
28년의 시차를 두고 역기시감인지,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 마구잡이로 헝클어진 것인지, 두 부분으로 나뉜 이 책은,
후반부로 접어들 때 재미가 배가된다. 하지만 후반부가 조금 길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작가의 문체는 매우 간결하며 묘사와 대사를 잘 쓰면서 묘한 공감대를 일으키는 디테일을 잘 가지고 놀며, 캐릭터들도 꽤나 선명하며,
기억의 전반을 다루지만,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영롱하며 산뜻한 이미지가 어떤 배음을 내고 있는지, 그 감각이 사실은
지금 어떤 의미로 변했는지, 주로 사랑과 배신 그리고 혼란과도 같은 역동적인 욕망 자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같다.
반면 소설은 긴급을 요하지 않은 태도를 보여주며 이 픽션의 방향성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뭐랄까? 마치 병적인 것 같은 느낌과 해소되지 않은 면모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이 불러일으키는 것보다는 독자의 내면에서 서서히 휘발되어 가는 어떤 향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죽음, 공포, 피, 죽은 아이, 그렇게 사건보다는 사건의 기억들이 화자의 기억 속에서 조합되는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더할 것이다.
생각보다 잘 쓴 책임은 분명 하나, 우리가 혼돈에 빠진 어떤 남자의 밖으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전망 없음 때문에 큰 감동이 없는 것일까?
우리 모두 조각난 남자이며 우리를 제대도 바라보고 가리켜줄 “모든 것을 본 남자”는 이제 없기 때문에,
그를 기다릴 줄 아는 기다림과 고독 그런 걸 원하는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