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한 대화로 이루어진...

<동네 공원>, 마르그리트 뒤라스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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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동네 공원>은 충격적인 작품이다.


일단 이 책의 얇은(?) 분량과 <동네 공원>이라는 나이브한 제목에 이끌려,

한두 시간짜리 간단한 읽을거리로 치부했던 나의 게으른 뒤라스에 대한 이미지는

이 책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아 붕괴(?) 되었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뒤라스, 뒤라스 여사, <히로시마 나의 사랑>의 각본가, <연인>을 쓴 작가...


뒤라스는 프랑스 여성 작가라는 '이미지'에 너무나 근사하게 들어맞는 작가여서

인생 자체에 대한 신화가 작품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처럼 그녀의 책들을 겉핧기로 읽은 남성들에게 주된 이미지일 텐데...


그럼에도 나는 뒤라스가 한심한 보봐르보다는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마지막으로 뒤라스의 어떤 책을 보았냐고 하면 정확히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1955년에 발표한 이 이상한, 투명한 대화로만 이루어진, 희곡도 아닌, 소설도 아닌, 장면 바뀜도 없이 오로지 연극적인, 의자에서 아이들이 뛰어 노니는 소리와 간간히 등장하는 장면을 빼면, 두 하층 계급이 나누는 진솔한 대화로 이루어진,


끝을 모르는 고독의 밤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말 할수 없는, 내밀하고도 신선하고, 착하고 또 서정적이며 무척이나 산문적인 이 대화들의 향연을 듣고 있자면,


자세를 바로 잡고 이 주인공들의 얼굴과 그 표정이 궁금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장돌뱅이, 외판원인 사내와, 어느 중산층 가정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는 여자,

남자는 30대 중반 정도 여성은 20대로 추정되는 이 둘은 우연히 자리에 같이 앉게 되며, 주로 여자가 남자에게 건네는 질문을 남자가 궁리하며 대답을 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남자가 한 번도 자신에게 한 적 없는 질문들을 통해 둘 다 대화 속에서 성장하고 모험하고 사유하며 또 꿈을 꾼다. 가설을 검증하고 또 새로운 가설을 내비치고 대화하고 토론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꿈을 말하는 여자의 달뜬 목소리, 중간만큼 성숙하고 중간만치 제자리걸음도 하며, 중간만치 실패도 했지만, 또 중간만치 인생에 대해 만족하는 남자가 새로운 교양을 연습하는 듯한 목소리.


오직 이 두 개의 주된 선율이 심도 깊게 진행되면서 묘한 스릴을 가져오고, 우리는 1955년 혹은 그보다 더 이른 시절 유럽의 보편적인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 소박한 남녀의 삶의 세부를 간접체험하면서 그들의 고민과 경험과 말들의 의미를 차츰 내 속 안에 가져와서 비교해 보면서 관찰하고 공감하며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다 읽고 나면 어떤 의미에서 옅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실존에 대한 헛헛함과 연민, 그리고 이들 주인공들의 한 줄기 빠르게 지나가는 희망과도 같은 짧은 순간의 여운 같은...


왜 뒤라스가 이후 태동한 누보로망이라는 사조에 큰 역할을 했는지 이해되면서, "새로운 소설"이라는 운동에 새로운 형식을 과감히 부여하며 그 내용으로 전혀 소설적이지 않은 인물과 '서사'를 깡그리 무시한 형태를 제시한 과감성이랄까, 배짱이랄까 그런 걸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실험적이지만, 그 실험을 통과해서 보면 또다른 인간의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일견 사랑스러운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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