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몰윤리의 싸구려 서커스같은,

<바캉스 소설>, 김사과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김사과의 <바캉스 소설>을 우연히 읽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내내 책장을 넘기다 말고, 그만둘까, 짧지도 않지만 읽을수록 실망만 가득할 것이란 생각에, 남는 시간을 더 효과적인 곳에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실존적 고뇌를 강요하게 한 그런 책이었다. 누가 대신 돈을 주고 읽어라고 해도 곤혹스러울 정도의...


페이지 터너가 있다면, 페이지 폴터(Falter)라는 것도 있을 수 있을 텐데, 이런 책이 그럴 것이다. 나도 좀 유식한 척 티를 내본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로아라는 여성이다. 20대 후반 국제적 금융 컨설팅업을 하는 외국계 자본의 회사에서 5년간 열심히 일한 후 강압적인 퇴사의 기로에 있는 이 '평범하고 이기적인' 이로아는,


회사를 다니면서 깨닫게 된(?) 자신의 숫자에 대한 감각을 십분 발휘해 중동 전쟁의 발발 전, 유가 관련 레버리지 파생상품에 자신의 전재산을 투자해서 무려 1733퍼센트라는 막대한 수익을 얻어 통장 잔고에 100억이라는 비현실적인 숫자를 가지게 되며 자연스레 퇴직을 하게 되고,


이 회사의 상담사 양은영이 조언했던 대로, 섬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 소설 속에서 한국의 발리를 꿈꾸는 제주도 남서부의 초호화 리조트로 이동.


소설의 2장부터 시작되는 리조트와 그 바깥,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간 속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별안간 꿈속에서 마주한 소녀 유령의 암시를 따라 그 소녀의 비극적인 죽음을 파헤치는 미스터리-모험이 소설의 후반부를 장식하게 된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타의(?)에 의해 퇴직한 20대 후반 여성이 초호화 리조트 생활을 하며 거기서 만난 정체불명의 남녀들과 어울리다가, 자신이 다니던 전 회사 사장과 연관된 충격적인 진실을 목도한다는 것인데...


이 소설의 이상한 점은, 이렇게 '1장'과 '2-5장'까지가 완전 상관 없는 듯 따로 논다는 점이고,


1) 주인공 캐릭터 이로아에 대한 어떤 감정이입도 할 수 없다는 점,


2)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인물의 현실성, 실재감, 깊이감이 1도 없다는 점,


3) 작가가 이로아의 생각을 빌려 펼치고 있는 요설이 이 작품의 설정과 세계관에 도움이 되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아는척하고 싶어 한 건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는 점(작가의 요설에 비해 대사의 밀도는 왜 한결 빈곤한 건지),


4) 그래서 이 소설에서 소녀의 죽음과, 양은영의 죽음 그리고 쓸데없는 아기 코끼리의 죽음들이 가지는 파급효과나 그 중요성, 무게가 1도 없다는 점,


5) 때문에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은 복수의 결말 또한 아무런 스릴도 해소감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6)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너무 짜쳐서, 고등학생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대사로 캐릭터의 성격을 추출하거나 분석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


등등 하품도 안 나오는 수준의 서사와 캐릭터로 일별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로아의 패착은, 그녀가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의 기대 지평에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00억대 자산가가 되었는데 너 거기서 뭐해?)


무릇 어떤 소설에서건 일확천금과 같은 100억이 등장한다면,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가 사건에 중요한 동기 또는 윤활제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100억이라는 돈은 아무런 사용가치도 이후 이어지는 사건과 연관성도 전혀 없어 보인다. 초호화 리조트 생활을 하기엔 너무 벅찬 금액일 뿐. 렌트한 포르셰를 끌며 비극적으로 유명을 달리한 소녀 유령의 뒤를 쫓는다라는 허세만 쩌는, 무용한 장치인 것이다.


한편 이로아의 가족들에 대한 기술도 독자의 냉담함을 가중시키기만 하는데, 부동산 투기로 혼자만 부자가 되어버린 엄마에 대한 이로아의 비판과 생각은 깃털처럼 가볍고 가소롭기만 하다. 스스로 노예라고, 자신이 만든 세계에 혼자 존재하는 듯하며, 다른 사람과 관계 맺음을 어떤 식으로 소화시키지도 못한 이로아라는 여성은 '모럴'을 상실한 그 모습 그대로, 무-윤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독자는 이로아의 모험 같지도 않은 사건 사고들의 연쇄를 겪었을 때 피로감만 가중될 뿐, 어떤 지랄을 해도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다.


노 모럴 노 심퍼시.


소설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 중 신해남 역시 마네킹 같은, 조연도 아닌, 그림자 같은 존재이다. 이로아에게 어떤 외부적인 충격을 주지도 않고, 이 둘은 몸을 섞는 장면이 암시됨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 어떻게 이 둘만 나중에 살아남게 되는지, 그것도 어처구니가 없다. 왜 니들이 아직 살아있지?


이런 몰-캐릭터성은 이 소설의 빌런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뤼카스와 정석 또는 블라드 이런 이름들의 남성들은 거창한 설정속에서만 미친넘들 나쁜넘들이지, 소설 안에서 작가가 열심히 이런 부분들을 보여줘야하는데, 소설 안에서 이들은 이로아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악인이 악인다워야 복수와 모험에 조금이나마 스릴이 붙는거 아닌가요?


이렇듯 캐릭터가 불완전해서 붕괴될 여지조차 없는데, 어찌 그 캐릭터들을 따라 휘말려 들어가는 모험에 감히 독자가 집중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더해 그 사건을 추동하는 거대한 음모적인 부분들, 작가가 비판하고 싶은 자본주의 체제와 공적 시스템 전형적인 체제 수호자 역할을 하는 공무원, 회사 간부, 또는 힙스터 같은 부분들이 1이라도 울림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사건을 엮어내는 기술이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도무지 꿈에서 유령이 나왔다는 식의 쌍팔년도에나 있었을 법한 허황된 전개방식과, 이로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그 옆에 와서 모든 진술을 끝내버리는 식의 서술은 이 소설 제목이 <바캉스 소설>이라는 것만큼 한심하다. 무슨 블랙코미디도 아니고, 한심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유령 이야기에서 보게 되는 사실적인 디테일과, 거대한 사건의 윤곽 그리고 문학적인 상징들과 그 사연을 파헤치면서 조우하는 의외의 등장인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개인적인 동기와 인간적인 결함들, 그리고 사건이 완결되면서 암시되는 자본의 행패와 우리 모두의 불완전함, 실존의 고뇌, 이런 고차원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란 생각은 이 <바캉스 소설>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다.


물질에 중독된 겉모습에만 치중한 흐리멍덩한 설정과 그 설정을 잇는답시고 공간도 불분명한 장소에서 앵무새처럼 고등학생들이 할 법한 욕과 대사를 내뱉고 쉼 없이 담배만 피우는 몰개성적 캐릭터들이 한 트럭이라니...


올해 읽은 가장 못 쓴 책, 가장 거지같은 책 1위라고 할 만하다.

한편, 수준미달의 한국소설들을 걸러낼만한 평점 사이트 같은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와 같이 소설 읽기를 취미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척 잘 이용할 것같은데,

대부분 그들도 이런 소설과 마주하면 그때문에라도 더더욱 한국작가 책을 읽지 않게 되고,

한국 작가 책에 대한 코멘트도 더는 하지 않으려 들것이고, 결국은 무관심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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