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미지근한 언니의 사랑

이상한 한국 소설(1) - <빛이 다가올 때>, 백수린 단편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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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의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에 실린 단편 <빛이 다가올 때>를 우연히 읽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님을 둔 간호대학을 졸업한 화자는 30대 초반에 뉴욕행을 결정, 뉴욕의 간호사가 되기로 결정했고,

우연히 연구년을 맞아 뉴욕의 한 대학의 교환교수로 온 큰 이모의 첫째 딸인 언니와 재회한다.

큰 이모는 병으로 시력을 상실하고, 이후 큰 이모 간병을 위해 젊음을 바친 언니는 큰 이모의 꿈이었던 교수를 이른 나이에 직업으로 택하게 되고(나름 성공했고), 그렇게 화자는 과거 자신의 입시 시절 과외 지도를 해주곤 했던 거대한 후광을 지닌 언니와 성인이 된 이후에야 다시 재회하는데,

뉴욕의 한 카페에서 자주 만나던 언니와 나는 카페에서 일하는 20대 아르바이트생 남자 개리와 친분을 쌓게 되고, 수줍고 영어에 서툰 언니가 개리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음을 알게 된다.

대략 이런 줄거리인데...


하지만 이 소설의 화자는 조금 우유부단하면서도 뭔가 꽉 막힌 듯한데,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세탁소라는 공간에 갇힌 부모님에게서 벗어나, 생활비 일부를 책임지고 있지만 자유로운 세상을 누리고 있다는 어설픈 자유로움과, 자신이 우러러보던 이모가 사실은 영어 소통도 잘 못하고, 큰 이모의 꿈을 그냥 부여받아 교수가 되었을 뿐, 제대로 된 사랑도 한 번 해보지 못한 그런 어른이라는 자각을 하면서, 한 층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낼 듯하다가, 언니가 개리에 대해 품은 연정의 관찰자가 되어 이를 옆에서 소극적으로 중계하는데(자신이 뭐라고 언니의 사랑을 비웃는 듯하는데), 그 화자가 하는 일은, 개리를 보던 언니의 얼굴에서 보였던 '빛'과, 큰 이모가 살아 있을 때 언니가 들려준, 앞이 안 보이는 큰 이모가 산책길을 묘사하면서 충만해진다고 했던 '빛'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것이 이 소설의 제목인 "빛이 다가올 때"이의 '빛'이고, 그렇다면


이는 누군가와 사랑의 시간을 겪은 이의 얼굴에 맴도는 충만한 감정의 한 때의 그 '빛'인데, 그 '빛'에 대해 말하면서 갑자기 화자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회고하면서 끝이 나게 된다.


이들 세계에선 얼핏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맺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니는 개리에게 고백을 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개리가 거절하자 연구년이 끝나며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교수의 일상으로 복귀하고, 화자는 자신의 바쁜 일상을 거듭할 뿐, 의미 있는 동반자를 만난다거나 자신에게 그 "빛"을 가져오기 위한 어떤 시도나 이야기들을 배제하고 있다(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화자가 전개하는 회상 속 인물들이나 뉴욕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은 너무 케케묵은 방식으로 처리되어 아무런 현실성도 없어 보이고, 대사마저 고리타분하다. 그러니 당연히 나이건, 언니이건 게리며 게리의 여자친구 역시 뭉툭한 인형의 윤곽처럼 느껴질 뿐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상대방 술맛도 확 떨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사건은 하나도 없고 고작 감정의 시작과 하나의 인상적인 순간에만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좀 하품이 나고, 뭐라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이야기라, 읽기 자체가 곤혹스러웠다.


화자는 어떨 때는 우월감에 차서 언니를 비난하는 기색이 크고, 또 어떨 때는 공감 어린 눈빛으로 언니의 과거의 '빛'에 대해 찬양한다.


도무지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자신은 소극적인 전달자로서 머무는데 그렇더라도 도무지 이런 게

전달할만한 소설적 진실-픽션적 재미 중 어느 것도 거둬들이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그 자체에 대한 판단도 없는 화자를 내세운 게,

이 소설이 아무런 재미도, 아무런 시사점도 주지 못하고, 그냥 그랬대~, 같은 사담의 영역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 읽어도 낡고 부석거리는 먼지가 덮여 있어, 가족 앨범을 들추다 큰 이모가 나왔는데, 큰 이모 첫째 딸 똑똑했잖아, 지금 뭐 해? 그럴 때 누군가 해주는 이야기 아마 이 정도일 것이다.


소설가가 여기에 일견 소설적 진실이나 이야깃거리를 찾았다면 핍진성에 함몰되어 판단을 주저할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덧붙여가면서 한 인물을 대표하는 정서를 보다 다각화해서 깎아내야 한다. 가상의 인물이라도 적극 등장시켜 뭔가 전개가 되어갈 장치나 플롯의 동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 어느 것도 여지도 안 보인다.


시무룩한 화자, 도무지 90년대에 불쑥 나올만한 입체성이 1도 없는 언니, 거기 등장하는 외국인들도 하나같이 마네킹 같아서, 광체라곤 찾을 수 없는 이런 기억들,


한국 소설가들의 이런 착함은 노잼의 뒷면이고, 성실함은 우둔한 서사의 다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