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모신 하미드
2017년 출간된 짧은 장편 <서쪽으로>(원제: <Exit West>)는 파키스탄 출신 영국작가 모신 하미드의 4번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사이드'라는 종교적 교리를 따르는 완고한 성격의 남자와, 나름 독립적이며 본능적이기도 한 지적인 여성 '나디아'를 중심으로, 내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구체적으로 지명이 밝혀져 있지 않은 나라(아마도 중동의 무슬림 국가)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12개의 짧은 장으로 이뤄진 소설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각 장의 중간에 또 다른 나라의 또 다른 인물을 등장시켜 이들의 공간과 생각들(주로 떠남과 정주함의 장소인 집을 중심으로)을 나열하다가 다시 사이드와 나디아 이야기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뜬금없는 장면들이 등장하는 게 이상하다 싶지만, 곧 내전이 격화되고 가족들이 예견된 사고를 당하며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머물 수 없게 된 이 젊은 커플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이야기 속 이야기는 마치 영화 속에 맥락 없이 삽입되지만, 중심 주제와 느슨하게 연결하기 위해서임을 독자는 예감하게 된다.
이야기의 무대는 동쪽을 떠난 사이드와 나디아가 이후 이민자들이 폭증하게 된 그리스의 어느 장소, 그리고 영국의 런던, 마침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로 변모한다.
사이드와 나디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어떤 고난을 겪으며 여행을 하는지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마치 눈을 한번 깜박이면 그들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만,
이민자라는 신분 때문에 누군가 버리고 간 집에서 다른 이민자들과 같이 생활을 하거나, 주섬주섬 버려진 자재들을 활용해 판잣집을 짓고 육체노동을 하는 일상을 그들은 살게 되는 식이다. 어디에도 낙원은 없고, 그들은 또 다른 이민자들과 짧은 교우를 가지며 그들의 피곤한 육체와 희미하게 주어진 자유를 더듬으며 확인하는 식이다.
이 소설의 추상성과 구체성은 작가가 의도한 한도에서만 발휘되고, 독자는 오로지 사이드와 나디아의 내면을 따라가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 혹은 사랑이 이 힘겨운 여정과 낯선 도시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추적하게만 허락된다. 사이드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고 나디아 역시 표현을 하기보다는 참는 쪽이다 보니, 이들 관계의 틈은 결국 회복될 수 없는 쪽으로 벌어진다.
상당히 시적인 문장들, 구체적인 감정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반면, 작가는 아무런 동정도 희망도 낙관도 보이지 않은 채,
그래서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시간'을 겪는 편평한 비극을 만들기보다는,
서쪽을 향한 '출구'를 선택한 그들의 마음과 여정이 어떻게 그들 사이를 떨어뜨리는지, 어떤 가능성이 그들에게 선택받는지를 관찰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 앞에 또 다른 문이 열릴까?
과연 우리가 평생 살아가는 집이란 장소는 나를 위한 것일까? 내가 사라지고 난 이 집은 어떤 변화를 겪으며 먼 훗날 우리가 다시 여기로 돌아올 때 이 장소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 같은 생각...
언뜻, 불충분한 정보, 묘사의 부재 때문에 불친절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각자의 나라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집과 그 집이 있는 동네를 돌아보며, 기본적인 삶의 기반이 붕괴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어디로 이동할 수 있는지, 그곳에선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은 중립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시간여행을 가능케하는 '문'과 같은 느낌인데, 그 문을 열면 곧장 디아스포라가 된다(?). 그렇다고 문을 닫고 영영 지낼 수도 없다.
모신 하미드의 다른 소설은 또 톤이 완전히 다르다. 그 역시 이민자 출신이라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식의 평범한 소설을 구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글쓰기를 택한 것이고 이런 차별성이 그의 소설에는 잠재해 여러가지 가능성으로 나타나는 것같다.
평점은 5점 만점에 3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