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 숄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90년대 중반 '청사'에서 나온 짧은 단행본으로, 책의 내용보다 그 제목이 더 유명했던 그런 책이다.
당시 과독서실이나 도서관 한켠에 늘 꽂혀 있어서, 그 독특한 제목 때문에 연애 소설이나 낭만적인 줄거리가 아닐까? 마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느낌의 책으로 섣불리 판단했었다. 당시에도 물론 낡고 누런 페이지에 작은 인쇄 글자체가 박혀 있었어 몇 번 들어서 뒤척거렸을 뿐 제대로 읽어보진 않았다.
이 책이 복간되고 원문이 충실히 번역되었으며, 이 책의 제목이 실제론 <백장미> 였음을 이 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유명한 책 제목 때문에 <백장미>가 아닌 기존의 제목을 따랐음은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나치가 주도권을 잡고 유럽이 2차 대전의 격동에 휘말려가던 시절,
독일 중산층 출신의 대학생 한스 숄과 누이동생 소피 숄, 그리고 대학 교수인 쿠르트 후버를 중심으로 나치에 저항하는 대학생 저항 조직 "백장미"단의 짧은 활약에 대해, 한스와 소피의 윗 형제인 잉게 숄이 재구성한 책으로,
느슨한 전기 및 느슨한 소설적 각색이 들어간 책이다.
한스와 소피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들이 나치의 비정상성에 눈을 뜨고 적극적인 활동가가 되어 대학 내 전단을 작성하기로 한 그런 사건들을 추적하면서, 한스와 소피가 어떤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했는지를 다루면서 부록으로 백장미 단의 5차례 전단지를 덧붙여 충실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나치 독일의 만행의 역사는 아우슈비츠 같은 거대한 만행 때문에, 자국 내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관해 상대적으로 안 알려져서, 실제 이런 유복한 중산층 출신의 깨어있는 대학생들의 저항이 조직적으로 있었단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시차를 두고 알려진 실화들은 지금도 그 영향력이 클 것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크루트 후버 교수가 사형 선고를 받은 재판에서 펼치는 마지막 항변의 원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변론은 앞선 독일의 유구한 사상가들과 문학가들의 논리와 말들을 빌려와 전개하는 것으로, 논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타당한 결론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한 당시 사법부의 책임자들은 나치 몰락 이후 철저히 조사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