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잡기의 중단? 안물안궁

<두더지 잡기>, 마크 헤이머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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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일스의 정원사 출신(?)의 작가 마크 헤이머의 <두더지 잡기>를 훑어보았다.


이 책 자체는 작가의 생의 경험이 응축된 문장이나 완성도, 그 책의 기획, 내용면에서 일급 에세이로 분류되어도 무방하다. 심지어 황유원이란 젊은 시인의 번역이어서 특히나 번역 품질도 최상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고 자기 삶을 되돌아볼 사색의 시간을 즐긴 듯하다.


한국어 제목이 "두더지 잡기"이고 부제로 '노년의 정원사가 자연에서 배운 것들'이라면

영제는 "How to catch Mole" - 'And Find Yourself in Nature'이다.

영제가 두더지 잡는 방법과 자연에서 당신을 찾는 법이 병기되어 있는 형국이다.


노동자 출신 계급으로 젊은 시절 야생에서 노숙하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의 리듬을 익힌 저자는 자신이 맘 편히 할 수 있는 자연활동 속에서 직업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가장 인공적이며 또 다른 자연 형태를 모방한 정원을 가꾸는 일이었고, 이 일의 핵심은 식물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식물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정원의 천적인 두더지를 포함한 각종 곤충들 작은 약탈자들을 처치하는 것과도 더 크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노년의 정원사는 그동안 많이 죽임을 당한 두더지에 대한 연민을 털어놓으며 두더지라는 동물에게 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일종의 고백록이라고 봐도 된다. 두더지라는 동물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두더지를 죽이는 일을 포함한 '두더지 잡기'는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두더지 잡기'를 그만둔 사람이 '두더지 잡기'에 대해 말하는 책이 이 글이다.


때문에 문득 나는 무리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부류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자연주의나, 생명에 대한 존중 이런 종류의 주의 주장이 과도하게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문명이나 돈벌이, 직업을 통해 삶을 일궈온 사람이 일종의 자신의 직업윤리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 직업윤리가 틀렸다고 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에세이의 지극히 시적인 문체 때문에 더 곤란하기만 하다.

아포리즘적 문장들과 과감한 사유의 연결들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정원사로서 그의 경험의 강도를 나타내주기에 그럴 수밖에 없지만,


나의 경우 평생 죽기 직전까지 두더지 잡기를 포함해 자신의 개와 함께 생활을 하다, 늘그막에 작가로 데뷔한 어떤 사람의 투박한 직업윤리과 그의 고지식한 생활의 단면이 그대로 노출되는 방식이 더 편안하지,


뭔가 깨우친 것처럼 '두더지'에 대한 연민을 자아내는 방식은 뭔가 불편하다는 뜻이다.


작가 스스로 더 이상의 살생을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두더지의 비단결 같은 감촉을 느낀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을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란 그러한 귀엽고 소중한 두더지 같은 것들을 계속 죽여나가는 방식으로 진화해 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의 정당함에 대해 주장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보다 더 큰 가치들과 동기들이 지뢰처럼 깔려 있어서 우리는 그 길을 가게 되는 것 아닐까?

자연의 법칙, 약육강식과 먹이사슬, 각자의 영역들, 그 어느 것에서도 자연은 연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마크 헤이머 한 사람이 두더지를 죽이지 않는다고 선언해도, 지금도 많은 정원 관리사와 그 젊은 조수들은 두더지 포획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받은 급료와 일당이 고스란히 식료와 렌트비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너무 냉정한가? 나는 문득 그런 자의 자연이 궁금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급료와 일당으로 생활하는 무명인의 가족과 그들의 성격과 그들의 삶이 때론 궁금할 뿐이다.


마크 헤이머의 아름다운 산문은 마치 10대 소년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처음 들었을 때 느끼는 추상적인 감동과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이런 산문에 준비되어 있지 않고, 두더지를 잡지 않은 결심에 대해서도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 같다.


마크 헤이머는 이 책 이후에도 계속 많은 책들을 쓰고 본격적인 작가로의 두 번째 삶을 잘 영위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신간 <씨앗에서 먼지로>의 방대한 텍스트양을 보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글쓰기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문득 영국은 대단한 나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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