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문학적인 스릴러

<길고 빛나는 강>, 리즈 무어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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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출간된 리즈 무어의 <길고 빛나는 강>(국내 2021년 출간)을 90페이지 정도 읽다가, 잠시 내려놓은 후 어젯밤에 마저 내리읽어갔다.


독서를 잠시 중단한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이 소설에 대한 첫인상(여성 순찰관이 연쇄살인을 추적한다는 전형적인 스릴러)을 이 소설이 배반했기 때문이고, 독서를 끝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빠른 전개의 이 책 자체는 소박할 망정 구성이 거의 완벽하고, 합당한 반전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면이 적절하게 등장해서 뒷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적으로 거의 완벽한 구조를 갖춘 스릴러라고 해야겠다.


대략의 이야기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난 케이시와 미키 자매는 어렸을 때 돈독했지만 어느 순간 동생 케이시가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사이가 벌어진다. 케이시는 급기야 마약에 빠져 매춘부로 거리 생활을 하게 되고, 미키는 경찰을 직업으로 선택, 이제 막 독립하게 된 싱글맘이다. 어느 순간 케이시가 거리에서 더는 보이지 않고, 십 대 소녀를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자, 미키는 동생이 다음 타깃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거리를 헤매며 직접 탐문하기 시작하는데...


물론 자극적인 범죄에 관한 묘사나 추격시퀀스나 폭력적인 장면들을 기대하며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종류의 스릴러를 기대한 독자라면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겠지만,


필라델피아 켄싱턴 구역의 실제 현실을 적극반영한, 굴곡이 있는 가정사를 가진 한 자매의 이야기로 접근해 그녀의 가족사와 가족 구성원들과의 갈등, 그녀의 예전 파트너와의 관계 그리고 새로운 살인 사건의 불안 요소들, 미키의 아들의 아버지와, 경찰 내 비리, 할머니와 중독자였던 아버지와의 관계 등등.


미키라는 여주인공의 시선에서 진행되고는 있지만, 그녀가 홀로 서기 위해 그리고 동생의 안위를 붙들고 추적하는 과정들이 지극히 현실적인 디테일들과 대사들로 이루어져, 책을 덮고 나면 그 캐릭터가 선명하게 부각되면서, 전체적인 상이 우뚝 서게 되는 그런 종류의 소설인 것이다. 그러면서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들의 위치와 조연의 역할들이 잘 조명되면서 굉장한 핍진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때문에 이 책은 일반적인 의미의 영웅적인 여성 경찰관의 분투나, 범죄 해결의 단서를 찾아 정교한 추리 한다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다소 오락적인 요소를 확 걷어내고,

불안을 품고 있는 싱글맘의 시점에서 그녀의 고단한 삶(베이비 시터와 아랫집 부인 같은 현실적인 디테일)을 따라가는 방식을 택했다는 지점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자 뛰어난 선별점일 수 있는데,

그 결과 육아와 동생 추적 등으로 피로에 찌든 미키의 캐릭터성이 후반부에 갈수록 많이 답답해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취약점이 있다.


결국 사건이 해결되면서 케이시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면서, 우리 미키는 과연 어떤 삶을 이어갈지 속 시원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스포라 다는 못 밝히지만, 미키가 조금은 불쌍해지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뭔가 자극적인 설정이나 마초적인 캐릭터들의 일반적인 스릴러와는 다른 독서 경험을 한다면 추천할 만한 책이다.


한편, 이 책의 제목 <길고 빛나는 강>이 조금 뜬금없는 듯, 너무 제목만 문학적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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