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보다>, 셔우드 앤더슨
셔우드 앤더슨은 그 유명한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의 저자이자, 미국 단편 문학을 논할 때, 특히 헤밍웨이와 포크너에게 낀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나름 유명하지만, 그 씁쓸하고 마치 우리나라 50년대 문학을 보는 것 같은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민중(?)-농민-하층계급에 대한 산뜻한 시선 때문에 왠지 모르게 기억에 남는 작가다.
그 전모는 가려져 있지만 <와인즈버그> 한 편만 읽어봐도 그의 세계가 어떻게 직조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중기 세편의 단편집에서 골라 묶인 <나는 바보다>는,
뭐랄까, 우유부단하면서도 비밀스럽고 내밀한 화자를 통해 진술되는 저 불안하고 그림자가 없는 듯한, 마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순간들을 옆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할까, 도무지 독자를 마냥 안온하게 안전하게는 절대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이 선 종류의 글쓰기.
편편이 쓸쓸하고 고색창연해서 더 기억에 남는, 책을 덮고 나서 이 인간군상들이 가없이 고독한 형태로 굳어진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은, 쾌활하게 이야기하거나 진지하게 이야기하거나 마치 비밀을 만들어내는 듯한 느낌인데,
이는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 기법의 특징인 듯하다. 특히 다소 메타적인 기법으로 쓰인 <우유병>을 보면 그의 창작과정의 힌트를 알 수 있다. 대도시 거주민들의 고독과 흥분, 찌는듯한 열대야가 지속되고, 우유는 금방 상해서 버려져야 하고, 그 반복된 더위와 도시인의 삶을 보여주는 우유병이 반복적인 라이트 모티브로 등장하며, 화자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의 입을 통해서 이 짓궂고 지난한 삶의 부조리를 떨쳐낼 문장을 쓰지만, 그 무엇보다 가식 없이 쓰인 문장에서 찬란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
첫 편인 <숲 속의 죽음>의 잊히지 않는 이미지도 그럴 것이고,
<형졔>에서 반복해서 거짓말을 일삼는 고독한 노인과, 가로등이 꺼졌기 때문에 욕망을 폭발시키는 관리자도 그럴 것이고,
그 시절 고독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자신의 욕망과 열정이 한없이 연기되는 것들을 감내하고 살았음을 추체험하게 된다. 그게 자신에게 주어진 오로지 하나의 형태인 듯, 그 범위 바깥에 무엇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척했던 이들의 삶. 하지만 면밀히 다시 돌이켜보면 그 슬프고도 반짝이는 삶이 마치 박제된 듯 거기 남아 있는 것이다.
기운 빠지는 책이지만 그럼에도 위안을 주는 요소들이 있다. 이 책을 덮으면 세상을 다시 마주할 기운이 솟게 되는 것이다.
셔우드 앤더슨이 그리 유명한 대중적인 작가는 지금도 역시나 아니지만, 가끔 쓸쓸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독서경험을 하고 싶다면 무리 없는 선택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