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77살, 다시 글쓰기를 위하여

<다시 쓸 수 있을까>,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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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펼쳤다가, 배경이 스웨덴 지명인데, 작가 이름은 그리스식 아니었나 싶어 다시 책날개를 살펴보니 역시 그리스 출신 스웨덴 작가가 맞았다.


대략적인 내용은 매우 교양이 충만한 문체로 글쓰기가 중단된 상황에 대한 푸념-호소에서 시작해 자신의 일상을 직관한 내용의 에세이로 무엇보다 번역이 술술 읽히며 그 전개도 자연스러워서 리듬이랄까, 노작가의 연륜이 충분히 느껴지는 짧지만 단단한 책이었다.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는 26살에 스웨덴에 와서 유학을 한 후, 교수가 되었고, 아예 스웨덴어로 시집을 발간해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작가로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낯선 이민자에서 스웨덴의 삶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이중 언어 작가를 선택한 그는 노년의 어느 순간, 더 이상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불러오지 않는다는, 이른바 '작가의 벽'(Writer's Block)에 직면한다.


그리고 그의 불안과 두려움과 그 가까스로 고안해 낸 지난한 해결책의 기록이 바로 이 글 <다시 쓸 수 있을까>이다.


이 책에서 감동적인 부분은 다른 게 아니다. 자신에게 변화를 과감히 단행해 오랜 시간 자신의 창작과 함께 했던 정든 작업실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의 고독을 일부러 방해하고, 그러면서 이주작가로서 자신의 삶과 현재 유럽에 만연한 극우적 사고, 이민자에 대한 증오와 그 부당한 여론에 대한 작가의 양심을 드러내고, 급기야 자신의 고향과 마찬가지인 아테네로의 이동이다.


그리고 마침내 77세의 노작가는 50년 이상 작품활동을 한 스웨덴어 대신, 모국어인 그리스어로 글을 쓰게 된다.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그가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모국어로 돌아왔다는 그 일련의 과정이 드라마틱하면서도 애틋한 감동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분리시켜, 그 바깥으로 내던져짐을 실행한 그의 의지였다고 할까, 그것은 글쓰기의 부름의 일종일까?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자기가 수십 년 글쓰기에 종사하면서 무한한 편안함과 익숙함을 주었던 그 공간, 출근길, 단골 식당, 단골 카페와 늘 마주치는 기분 좋은 풍경들을 폐기하고, 필요 없는 것을 다 처분하고, 집으로 돌아가 빈 공백을 다시 노려보며 시작하기로 한 그 결심!


그리고 다시 자신을 살피며, 몸을 이동시키며 새로운 생각의 들임을 시도하려는 이 노련함(?)!


그런 것들이 이 책을 읽으며 얻게 되는 지혜이자 위안이다.


우리 모두는 일종의 벽에 종종 가로막힌다. 그 벽 너머에 뭔가 진정 새로운 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환상 때문에 더더욱 벽은 우리를 향해 조여 온다.


하지만 지금 있는 위치에서 그 밖을 꿈꾸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필요로 하는 전망을 꿈꿀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감한 노작가의 이동, 그것은 곧 글쓰기로 이어지고, 우리를 더 먼 곳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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