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엄일녀 역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한국계 미국 작가 개브리얼 제빈의 2022년 소설이다.
천재적인 게임 개발자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기에 뭐랄까 facebook의 창업기를 다룬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게임 개발자 버전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전반부에서 중반부까지 흡입력과 속도감은 대단하다. 하지만 배신이나 음모보다는 주인공들의 인간적인 성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계 어머니와 유대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샘,
부유한 유대계 출신인 셰이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계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샘의 룸메이트 마크스,
이들 세명은 방학을 이용해 만든 게임을 위해 회사를 세우고, 경영학 전공인 마크스가 프로듀서와 회계를 담당하고 샘과 셰이디는 게임 개발과 디자인을 담당해 <이치고>를 성공시킨다.
회사인 Unfair Games의 흥망성쇠 과정을 그리면서 샘의 오랜 친구이자 샘이 게임을 만드는 이유인 셰이디,
역시 샘과 게임 이야기 나누는 게 좋았지만 결국은 자신의 것을 완성하고 싶어 하는 야망이 있는 셰이디,
우아한 외모와 사교성과 인품으로 둘 사이 중재역을 도맡은 빠져서는 안 될 캐릭터인 마크스,
소설은 10대의 모습에서 시작해 이들의 가족들을 두루 살피며 20대 30대로 이어지는 동안의 감정의 변화와 회사의 성장, 중요한 갈피들을 차근차근 훑어가면서, 이 인물들의 고통과 갈등, 그리고 그 극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 게임이란 어떤 사람들에 의해 탄생하고 어떤 진화를 겪고 또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어 가는지에 대해
서두르지 않으며 시대를 충분히 반영하며 재밌게 서술하고 있다.
나의 경우 90년대 '둠'으로 시작해, '스타크래프트'와 '카운트스트라이트'를 거쳐 남들이 하는 게임들은 두루 해본 세대이지만, 그럼에도 콘솔 게임기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어렸을 때밖에는 없다. 게임 CD란 그 시절 거의 다른 친구 컴퓨터에서 해봤거나 대부분 불법 복제품으로 했을 뿐이라, 특정 IP나 게임의 세계관에 대해선 그 게임들에 별로 진지한 접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소설을 보며 느끼는 노스탤지어는 크지 않지만,
게임이란 장르의 뛰어난 세계관과 몰입 요소와 레벨링이나 캐릭터 디자인은 문학만큼 뛰어난 예술성과 완결성을 요구하는 것이란 생각이 점차 자리 잡게 되었달까, 현대 생활에서 게임을 배제하고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그 중요성은 날로 커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이 소설을 더 집중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달까, 그들이 왜 그렇게 새로운 게임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 꿈꾸는지에 대해서,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에서 샘의 캐릭터 디자인은 정말 훌륭하다. 고통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기 위해서 게임에 몰두하는 샘에게 셰이디와의 대화는 그 어떤 게임보다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반면 셰이디는 다소 의문은 있어 보이지만 충분히 잘 그려진 것 같다. 마크스의 캐릭터는 너무 전형적이어서 비중이 없어 보였지만 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
600페이지 넘는 분량이지만 게임 현실을 기술한 장을 포함해 굉장히 기술적으로 잘 쓰인 책이며 구조 또한 완성도가 높다. 반면 게임 회사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성장이 멈추는 지점에서 소설적 재미가 다소 떨어진다는 생각은 조금 든다.
그리고 중후반부 "사막 좀비"건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지 빠트린 게 조금 아쉽다. 내가 기억을 잘 못하는 건가?
여튼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번역자 이름만 보고 선택한 책이었는데 상당한 완성도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어서 매우 만족하며 읽을 독서였고, 개브리얼 제빈의 또다른 소설들이 4편이나 국내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시간될 때 찾아서 봐야겠단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