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계속되는 한 아무도 죽지 않았다

<벨 칸토>, 앤 패칫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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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줄리언 무어와 와타나베 겐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된 바 있는 <벨 칸토>는

2001년에 앤 패칫이 쓴 소설이다.

'벨 칸토'는 오페라의 창법으로 미성을 강조하는 노래를 지칭하는 용어로, 이 소설은 실화를 기반으로 하지만, 줄리안 무어가 연기한 오페라의 디바는 작가가 창조한 순전한 허구적 요소라고 봐도 될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특정되지 않은 남미 국가이며, 배경은 소설 속에서는 80년대로 보이는데, SONY 같은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기기 생산회사의 호소카와 회장을 생일 축하연을 빌미로 남미 국가에서 초청하면서 시작된다. 이 축하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디바 록산 코스가 공연을 펼치게 되고, 호소카와는 그녀의 찐팬으로, 남미 국가에서 자국 내 생산 공장 설립을 종용하고자 록산 코스를 데려온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라도 참석하기로 한다.


그렇게 공연이 마지막 피날레를 향하는 동안 갑자기 한 무리 테러집단이 대통령을 인질로 삼기 위해 부통령의 집인 연회장으로 쳐들어온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국의 대통령은 연속극을 보느라 연회 2시간 전에 이미 불참 통보를 내린 상황.


처음부터 꼬여버린 테러집단의 장군은 200여 명의 인질 중 여성과 노약자는 내보내기로 한다. 하지만 록산 코스는 그 중요성 때문에 잔류하게 된다. 그 와중에 당뇨환자인 록산 코스의 반주자는 제때 인슐린을 공급받지 못해 죽게 되고,


소규모 국가 만찬의 특성상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 귀빈들이 다수 있기 때문에 호소카와 회장의 비서 겸 통역사 겐은 다행히 다양한 언어로 소통할 수 있기에, 이들 다수와 테러집단 장군과의 의사소통을 담당하게 된다.


2주간 소강상태가 이어지던 어느 날, 록산은 죽더라도 오페라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다며 억류된 인질들 중에 반주자를 찾게 되고, 곧장 죽음의 위협에서 이제는 무기한 연기된 지지부진한 협상 때문에 시간을 흘려보내던 사람들은 록산 코스의 아리아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하고, 그 부통령의 저택에서 각자 맡는 소소한 일상을 살게 되고, 테러리스트들로 알려진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실은 지저분한 옷차림의 삐쩍 마른 청소년들에 불과하단 사실을 알게 되며, 테러리스트와 인질 사이의 거리는 점차 가까워지게 된다.


127일간 아무런 소득이 없어 지지부진한 여정 속에서, 오페라 가수는 테러리스트 중 한 젊은 청년이 노래하는데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를 훈련시키는 보람을 찾고, 호소카와와 록산 코스, 통역자 겐과 여성 테러리스트 카멜라 사이에 연애 감정이 흐르게 된다.


이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이상한 인질극을 앤 패칫은 지극히 안정적인 톤과 인간에 대한 믿음과 풍성한 페이서스와 아기자기한 삽화들을 덧붙이면서, 특별한 긴장감 속 고요한 정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곳에서 일상과는 유리된 편안함을 누리는 사람들의 철저히 인간적인 연대랄까?


뭔가 90년대식 휴머니즘을 강조한 느낌으로 고전의 품격이 넘치는 그런 문장들이 전반에 흐른다. 해서 지긋한 독서의 풍미랄까, 픽션의 세계에 우리를 잠시 머물게 하는 그런 책이다.


굳이 결말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을 읽은 분들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것이다.


앤 패칫의 책들은 <벨 칸토>외에도 <더치 하우스>, <커먼 웰스> 등이 출간되어 있다. 뭔가 90년대식의 진중한 스토리텔러 느낌이라 그녀의 책들을 독서 목록에 담아서 애독하는 분들도 꽤 있을 듯하다.







p.s. 이 소설은 1996년 12월 17일 일본 왕 생일 축하연이 열리던 페루 주제 일본 대사관에 투파마루라는 반정부 소속 게릴라 14명이 난입, 700여 명의 주요 인사를 인질로 억류해 127일간 벌어진, '페루 일본 대사관 인질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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