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시, 내 삶의 빛,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스테이시>, 지피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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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노블 작가 지피의 <스테이시>를 읽었다.


예전에 같은 작가의 <아들의 땅>이라는 책을 헌책방에서 구해서 읽은 적이 있다. 뭐랄까, 아포칼립토 시대의 서사시 같은 느낌의 강렬한 책이었다.


이 책 <스테이시>는 현대물이다. 그것도 "캔슬 컬처로 야기된 어느 시나리오 작가의 몰락기"라는 뒷장의 간추린 소개 그대로, 어떤 인터뷰에서 꿈에서 본 여인에 대한 말 때문에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를 줄거리로 한다.


"캔슬 컬처란 '취소 문화' 혹은 '제거 문화'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배척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흥미로운 것은 스테이시라는 이름도 가상이지만, 소설 내에서 지아니라는 인물의 악마성을 상징하는 인물이 전면에 등장해 지아니와 악마가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 나락의 구덩이에서 뒤엉키면서 실로 매우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이다.


무척이나 실험적이며 비판적이며 도전적이다.


넷플릭스에 시리즈를 납품하는 프로덕션 회사의 공동 시나리오 작가 중 한 명인 지아니는 그 재치와 능력으로 업계에 명성이 자자한 나름 검증된 작가인데, 어느 인터뷰에서 부적절한 여성에 대한 묘사를 한 게 문제가 되어, 동료 시나리오 작가와 회사에서 배척당하게 된다.

이 소설은 작가가 경험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맥락인지 감은 잡히지 않지만, 흔히 말해서 어제까지 물고 빨던 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빨리 태세를 전환하는 것에 가장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무관하게 캔슬 컬처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가 선진국 중 으뜸이지 싶다.

Kancel Kulture 라고 해도 될 만큼, 우리는 한참 빨아주다가 저 무성한 싫어요와 SNS 댓글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방치한 미디어의 횡포를 알고 있고, 그 미디어에 댓글을 남기고 자발적으로 퍼 나르는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걸 한국사람은 너무나 잘하고 팝콘을 씹으며 혼밥을 하며들 잘들 지켜보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픈 민족, K 캔슬컬처, 모든 것을 흑백논리로 바라보길 좋아하는, 도파민 중독자들이 여기엔 넘쳐나는 것이다.


누군가 잘되는 꼴을 보면 언제 나락 가는지 예의주시하며 카운트만 하고 있는 그런 모양새, 내 저럴 줄 알았다, 인상은 과학이다, 등등 현자인척 하고 싶고, 아는 척하고 싶은 우리들.


그들은 스테이시가 누구였는지 애초에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중립적으로 지아니라는 인물 내부의 어두운 면을 형상화하는데 주력하는 한 편, 그 구성원에 대한 면모 역시 신랄하게 파헤치고 있다. 읽기 쉽진 않지만 한 번쯤 보면 흥미로운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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