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인류학이면 SNS는 고고학인가?

<인류학자들>, 아이셰귤 사바쉬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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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출신의 젊은 작가 아이셰귤 사바쉬의 <인류학자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한줄로 요약하면, 유럽 어느 국가, 당근에서 집 구하는 이야기!


주인공 아시아와 남편 마누는 특정되지 않았지만 유럽으로 추정되는 낯선 나라에서 집을 구해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이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아시아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며, 마누는 국제보호기구 같은 데서 일하는 것 같다. 소설에는 의도적으로 이들 주인공의 내력에 대해 절제하는 방향으로 서술하고 있다.


아시아는 자신들이 사는 집 근처 공원을 다음 프로젝트로 삼아서 그 공원을 촬영하며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딴다.


남편 마누는 특별히 친구가 없고, 현지인들과 관계를 맺는데 적극적이지 않아서, 아시아가 알게 된 사람들이 여는 파티에서 참여하지 않는다. 이들 부부에게는 라비라는 친한 친구가 있지만, 라비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닌지 알지도 못하고 그의 일상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가, 이들 부부의 조심성 때문인지, 라비의 성격 때문인지 밝히지 않기에 그저 그렇게 흘러간다.


아시아는 모임에서 만난 레나라는 여성과 친하게 되고, 중반부가 넘어가며 레나와 자신들의 친구 라비가 썸을 타는듯하다가, 결국 라비는 아시아가 예전부터 알았던 친구와 미래를 약속하며 아시아 부부가 새 집으로 이사할 즈음 그들 곁은 떠나게 된다. 그리고 공원 프로젝트가 있고,


자신의 건물에 사는 알츠하이머 증세가 있는 노부인과의 에피소드, 공원 프로젝트의 인터뷰, 그리고 중간중간 아시아와 마누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이런 삽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아이셰귤 사바쉬의 장점은 명확하고 간결한 문장의 적확함이다. 이 삽화들은 계속 중첩되면서 나름의 리듬과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뭐랄까 지나치게 넌픽션적인 평이한 서술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후반부에는 거대한 지루함과 책장을 넘기게 하는 탄력은 사라지고, 또 이 이야기가 나오네, 그러게 그럴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쓰이니깐, 더 긴장이 없네, 이렇게 귀결된다.


다시 말해서 짧은 삽화들을 전체적으로 연결시켜 줄 끈적한 접착제가 없이 두서없이 쌓인 듯한 느낌 그대로, 인스타그램 피드가 중구난방으로 올려져 있어서, 도무지 어떤 특성이 있는지 짐작하기 힘든 그런 방치된 일상들은 아닌가? 란 의문이 든다.


작가는 소설 내에서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일"이 곧 이 소설이 의도하는 바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데,


작금의 SNS나 유튜브에서 모든 개인들이 크리에이터가 돼서 기를 쓰고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지극히 과대평가된 느낌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모두가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계정을 운영하고 자기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런 하품 나는 에피소드들의 연결이 뭔가 숭고한 일상에 대한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까? 소설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짧은 책이라 무리 없이 읽기엔 충분한 내용이지만, 대게 시간 때우기용 콘텐츠들이 주는 갑작스러운 휴식의 안온한 느낌만큼의 여운도 없다는 게 이런 일상-삽화 소설의 딜레마인 듯. (시간 때우기용 콘텐츠들을 보는 이유는 그걸 즐기는 게 아니라 그걸 보면서 머릿속에서 딴생각을 하며 뇌를 쉬게 만들기 위함이다.)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다가 언제 끝나는지 지루하게 페이지를 세 개 만드는 노련하지 못한 책


별점 5개 중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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