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검은 몸"으로 꿈꾸기

<세상과 나 사이>, 타네하시 코츠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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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세상과 나 사이>는 순전히


내가 최근에 독서목록으로 염두에 두고 있던,


"뉴욕타임스 북리뷰" 선정 21세기의 100권이라는 목록 때문에 알게 된 책이다.


2000년부터 2024년까지 나름의 전문가들이 선정한 가장 중요한 소설과 픽션-논픽션들의 목록인 이런 종류의 리스트를 염두에 둔 까닭은, 독서가 내 생활의 주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취미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과거 고전보다는 지금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책들을 그들이 중요시 여기는지 알고자 하는 맘이 더 크다.


그리하여 주욱 국내 번역본들을 소설 위주로 살피고 있는데, 역시나 21세기 전반기는 페미니즘과, 퀴어 소설가들의 괄목할만한 세력을 볼 수 있었고, 디아스포라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도 크게 다루어져 있으며, 특히 흑인문학이 상위권에 많이 포진된 것을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제3세계, 동아시아의 반도 한국 독자인 나의 경우에도 영미권 주요 작가들은 모조리 앵글로색슨 백인이나 영국 또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백인 작가들에 국한되었던 경험이 대부분이었음을 문득 실감하게 된다. 90년대 학교 교육을 받았던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 세계문학이란 장르는 이런 백인들의 교양을 답습하는 것일 뿐, 당시 랄프 엘리슨이나, 리처드 라이트, 제임스 볼드윈, 응구기와 씨옹오, 치누아 아체베, 월레 소앙카, 토니 모리슨 등 흑인 작가들의 작품은 80년대 출간된 세계문학전집에서도 극히 소수를 차지하던 쪽이었다.


그래도 틈틈이 흑인 작가들을 읽어야지 맘먹었지만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여전히 독서는 백인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흘러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콜슨 화이트헤드를 통해 그나마 젊은 당대의 흑인작가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고 해야겠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이 책 <세상과 나 사이>는 뭐랄까, 랄프 엘리슨식의 모너니즘적 문체로 제임스 볼드윈식의 강력한 페이서스로 자신들의 나라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에 대한 사회고발과 흑인 수난사, 게토의 구조적인 문제점 들을 지극히 격조 높은 톤과 교양으로 써 내려가고 있다고 할까, 한 편의 웅장한 연설문을 듣는 것 같은 묵직한 감동이 자리하고 있다.


14세 자신의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적힌 이 글은 뛰어난 모든 문학작품이 그렇듯, 에세이, 소설, 연설문 같은 여러 형식이 혼재되어 있음에도 깊고 단단한 목소리로, 근원적인 문제를 노리고 있다. 직접적인 동기는 자신의 대학 동기이자 부유한 흑인 중산층 집안의 아들로 그 시절 동경을 품을 만큼 상징적이었던 프린스 존슨이라는 이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무방비 상태로 경찰의 총격에 목숨을 잃은 그의 죽음 과정을 둘러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찰의 해명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대응을 저널리스트로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저자 타네하시 코츠는 무기력감에 빠졌으며, 이를 계기로 곧장 자신의 몸이 합법적인 공권력에 언제든지 파괴당할 수 있다는 무력감이 이 편지를 쓰게 된 동기이다.


하지만 타네하시는 어떤 감상주의도 어떤 극단적인 해결책도 배제한 채로, 이 뿌리 깊은 절망과 무력감의 근원을 미국이라는 나라의 존재의의와 그 근원에서부터 성찰하고자 한다. 이 책은 때문에 같은 피부색의 독자만을 향하는 게 아니라 범 세계적인 공감대와 포용력을 갖추고 있다.


한 번에 끝나는 독서가 아니라 계속 책의 서두로 돌아가게 만드는 좋은 책의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손에 들 독자들인 이 책의 후미에 실린 두 편의 해설을 먼저 읽고 접근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우리가 그간 품고 있던 미국에서 흑인의 삶에 대한 얕은 이해만으론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타네하시 코츠가 기술한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문장들에 쉽게 이해의 폭을 열어젖힐 수 없으니, 대강의 문제점과 키워드를 익히고 그 문장들을 마주하면 보다 포괄적인 접근이 가능할 듯싶다.


평점은 5점 만점에 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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