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인 신대륙, 또는 모리슨 읽기의 어려움

<자비>, 토니 모리슨, 송은주, 문학동네, 2014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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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간된(국내는 2014년) 토니 모리슨의 <자비>는 그녀의 9번째 소설로, 그녀가 기존에 다룬 소설들의 시대상보다 이른 17세기로 거슬로 올라가, 식민지 아메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한다.


각각, 노예 소녀 플로렌스, 농장주 제이컵 바크, 농장의 일꾼인 인디언 여인 리나, 제이컵 바크의 아네 레베카, 난파선에서 구조된 임신 중인 하인 소로, 그리고 백인 노예인 윌러드와 스컬리, 그리고 이 소설의 주요 화자인 16세 플로렌스가 사랑을 느끼는 대장장이까지,


각자 인물의 시점에서 시작하는 짧은 챕터들의 연속체인 이 소설은 마치 포크너의 그것처럼, 쉬운 설명이 나오지 않아, 이들의 독백과 간접적인 묘사를 통해서 주변을 파악해 나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모리슨은 어떤 문학적인 의도보다는 노예로서 플로렌스가 겪는 거의 자연과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와, 누구 하나 잘못한 것 없어 보이지만 몰락하게 되는 농장의 모습을 저마다의 감정과 과거와 불안과 격정이 뒤섞인 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이 짧은 분량의 소설은 그래서 페이지가 짧게 느껴지지 않고, 광활한 대지와 황야와 강어귀와 무수한 날벌레들 혹은 혹한의 추위가 오가는 시공간이 특정되지 않는 곳에서 펼쳐지는 서사시처럼 느껴진다. 다분히 시적인 이런 몽환성이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단점은 있는 것 같다.


워낙에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고, 등장인물이 생각하는 시점이 섞이면서 독자의 읽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드문 등장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서술기법들이 추구하는 깊은 서정성이랄까, 침잠해 가는 서사적 휴지기에 등장하는 특유의 반짝임 같은 침묵의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 (나는 누구이고 내가 뭘 읽고 있는지 주여 가르쳐 주소서!...)


이 소설 제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선 전체 이야기를 다시 조합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다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다. 만약에 '자비'라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일부러라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면 말이다.


작가 토니 모리슨은 그럼에도 이러한 문학만이 가능한 대체적 역사의 복원 작업을 시도하며, 과거 노예제의 시작과 다양한 배경의 여성들이 겪는 일종의 공동체를 의도한 것도 같은데, 딱 그 순간만을 목표로 한 것인지, 다음 이야기들이 너무 궁금하긴 하지만 그 일종의 계시 같은 순간은 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워져 가 버리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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