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노린 음모>, 필립 로스, 2023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필립 로스의 걸출한 역작 <미국을 노린 음모>는 2004년 발간된, 1940년 미국 대선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아닌, 대서양 최초 횡단(은 아니지만 그렇게 잘못 알려진 것으로) 유명한 영웅적 조종사 찰스 A. 린드버그가 대신 대통령이 된다면, 그래서 히틀러의 나치 제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면 일어나는 뉴욕의 유대인 가족에 대한 대체 역사물이다.
이 소설은 특히 트럼프 집권시기에 파시즘에 대한 걱정과 한탄으로 열광적으로 재발굴된 바 있다.
린드버그를 트럼프로 바꾸고, 유대인에 대한 억압을 무슬림으로 치환하면 일어날 수 있는 바들이 이 소설을 통해 암울하게 그려져 있다.
필립 로스의 특별함은 그 시절 자신으로 여겨지는 7세에서 9세 사이 아이의 눈을 통해, 여러 소설에서 언급된 바 있는 보험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세일즈맨 아버지와 자신보다 3-4살 많은 형 샌디, 그리고 어머니라는 유대인 가족의 일상과 그 동네 주변을 노련하고도 원숙한 시선으로 그리면서, 린드버그라는 영웅적 인물이 구사하는 '안온한 파시즘'의 마수가 어떻게 평범한 삶을 서서히 망가지게 하는지를 밀도 높은 전개와 공감력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의 소설은 이를테면 씹는 맛이 있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하나의 인물의 지평과 그 인물이 겪는 사건들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이후에 전개될 사건에서 어떻게 미시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하면서 광풍 같은 가상의 파시즘의 광기와 거기에서도 바지런히 생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최소한의 간섭과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이지적인 풍자성과 문학적 허구를 적절히 분배해서 통합적인 구조를 구축해내고 있기에, 독자는 그의 풍성한 역사적 고증과 인물들의 역학관계에 주목하면서 신들린 듯 이 이야기의 후반부에 몰입하게 된다.
마지막 두 개의 장은 어떠한 범죄소설이나 스릴러보다 더 쫀득하게 독자를 붙잡게 된다. 역사적 필연성과 음모론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픽션을 또렷하게 부각하고, 그 휘몰아치는 사건들의 연쇄에 유대인 가족은 상처를 입을지언정 쓰러지지 않고 서로를 부둥켜안게 되는 것이다.
이전 독서에서 토니 모리슨, 그리고 타네하시 코츠가 각각의 방식으로 문학적 형상화와, 지적이고 서정적인 편지를 통해 미국에서 흑인, 노예제라는 것의 근원을 탐색하며 현재의 독자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한편, 미국에서 유대인의 지위가 비극적인 파시즘 정권 하에서 어떤 운명을 맞을 것인지를 촘촘히 분해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잘 쓰인 작품이며 혹자들은 소름 끼칠만한 반응을 보일 것도 같다.
<미국을 노린 음모>는 이러한 풍자-우화적인 상상력을 실제 소설 속에서 마치 일어났던 것처럼 서술하기 때문에 독특한 역사소설이며, 정치 스릴러이자, 유대인 가족의 고난을 다루는 시정 넘치는 픽션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의 후반부 대표작으로 봐도 좋은데 때문에 아직 읽지 못한 그의 나머지 후기작들 <새버스의 극장>, <샤일록 작전>, <왜 쓰는가?> 같은 책들이 얼마나 좋을지 가슴이 두근두근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