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미국 하층민의 찬란한 테마파크

<12월 10일>, 조지 손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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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박당한 혹은 구속당한 후기자본주의 미국 백인의 불우한 삶을 유쾌한 구성과 천연덕스러운 스타일로 펼쳐 보이다.


조지 손더스의 단편집 <12월 10일>을 읽었다. 그의 단편집 <패스톨러리아>를 빌려다가 짧은 순서대로 몇 편씩 읽었는데 어느 순간 뭔가 굉장히 짜증 나는 요소들을 발견해서 그 짜증이 책 안에 있는 건지, 내 안에 있는 건지를 헤아리다가 2-3편을 남기고 그냥 반납했던 경험이 있다.


이후 집어든 <12월 10일>은 꾹 참고 독서를 끝냈다.


뭐랄까 조지 손더스는 그 특유의 모더니즘 화법, 자유 간접 문체를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버지니아 울프의 장편보다 더 읽기 어려운 느낌이 종종 든다. 특히 책 읽을 시간을 마련하지 못해서 급하게 읽어내야 하는 경우에는 더 그런 게, 이미 독자의 머릿속에 다른 해야 할 일들과 다른 이미지들이 순서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 손더스판 테마파크의 인물들이 우당탕 들어와서 자신들 얘기를 줄줄이 꺼내는 것을 따라가기엔, 이미 내 시선이 책의 문자열 행간 사이 여백의 너머를 지긋이 그냥 노려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장면들이 떠오르다가도 몰입을 하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단편은 한 편을 읽고 곧장 다른 단편을 읽으면, 앞에서 했던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가 나중에 가서야 짐작되는 인물이 등장하고 또 우리가 훨씬 나중에 알게 되는 장면이 이해가 되고, 우리가 짐작하는 대로의 결말이나 마무리는 항상 나중에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다.


대체로 미국 중산층 이하, 생계를 걱정하는 하층민-레드넥 백인들의 가정을 중심으로 그들이 돈 벌기 위해 택한 회사, 직장, 그리고 보잘것없는 가정, 또는 그들의 소외, 고통, 몽상들을 이야기하면서 이 근근이 버티는 삶을 과장하고 묘한 역할극으로 돌려서 새로운 장소에서 조망하게 만드는 데, 그래서 이야기를 읽고 나면 신선한 위트와 깔끔한 교훈을 던져주기에 독자로 하여금 손더스 책을 읽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똑똑해지는 듯한 환상을 주는 그런 책이다.


반면 특유의 과장된 플롯과 인물들의 내적 독백들, 거친 수다와 장광설들은 이 이야기들을 오히려 음이 소거된 코엔 형제의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장면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모두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소설은 분명 아니지만, 오히려 행복해야 할 것 같은 주인공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바로 그 앞에서 서술이 중단되면서, 쾌활한 톤으로 짐짓 우울한 세상의 요소들을 다 끌어모아 놓고, 독자에게 독한 뒷맛을 남기는 식이다.


코엔 형제적인 드라마인데 의상과 코스튬과 미장센은 웨스 엔더슨의 인공미가 넘친달까,


기회가 되거나 손더스에 대해 글을 더 쓰게 된다면, 이 단편들을 한편 한편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금은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한다.


손더스의 <바르도의 링컨>은 나중에 읽기로 하자. 테마파크의 잔상들이 너무 눈앞에 어른거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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