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줄리언 반스에게 2011년 부커상을 획득하게 해 준 그의 대표작으로, 국내에서 특히 가장 많이 읽히는 그의 작품일 것이다.
이 짧은 책의 줄거리는,
60줄에 들어선 은퇴한 연금수령자 토니 웹스터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게 되고, 그 편지에는 우리로 따지자면 고등학교시절 친구 에이드리언의 유산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우리는 토니의 독백을 통해 1부 그의 치기 어린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고, 또래 중에서 가장 빈틈없는 지성을 갖춘 에이드리언과의 첫 만남, 그리고 복선처럼 깔리는 한 동급생이 여자친구를 임신시키고 자살한 사건을 알게 되고, 토니가 대학 들어가 정식으로 사귄 베로니카 포드라는 여성에 대해 알게 된다. 베로니카와의 기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주일 간 그녀의 부유한 교외 대저택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신분 차이를 의식한 토니에게 가족들의 추태를 마지막날 오전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사과했던 장면이 강조된다. 이후 베로니카와는 결국 헤어지게 되는데, 토니는 나중에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과 사랑에 빠졌음을 그의 편지를 통해(너의 전 여자 친구인데 사귀어도 되냐?) 알게 되고, 자신에게 씁쓸한 감정을 주었던 베로니카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에이드리언에게 늘 느꼈던 질투의 감정을 느끼며 통렬한 저주와 비난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정식 직업을 택하기 전 미국으로 도피 같은 여행을 떠나 돌아온,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지만, 그 이후의 삶은 그대로 이어지고 자신도 결혼을 하고 딸 수지를 낳고 와이프 마가릿과는 수년 전에 이혼했지만, 여전히 친구로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1960년대에서 2000년으로 시간이 지나고, 도착한 에이드리언의 유산에 관한 편지가 베로니카의 엄마에게서 왔고, 다름 아닌 500파운드라는 돈과,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 그에게 남은 것인데, 그 일기장을 베로니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토니는 순수하게(?) 친구의 일기를 받고 싶은 마음에 베로니카에게 연락을 하게 되지만, 베로니카는 그를 과거에도 지금도 절대 알지 못하는구나!라고 40년 전 비치 같은 성격을 부리고, 그럼에도 토니는 마치 보험회사를 상대하는 우직한 정공법으로 베로니카를 괴롭혀 일기를 빌미로 만남을 종용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설명도 얻지 못한 채 베로니카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다가 그녀가 한 무리의 지체장애인들과의 만나는 곳에 그를 데려가게 된다. 하지만 토니는 헛소리만 주절거리다 돌아오는데,
이후 토니가 다시 그 장소로 찾아가 스스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면서 과거 자신이 보낸 저주 섞인 편지가 실제가 되었음을 한탄하며 비탄과 회한의 감정을 품게 되지만, 그는 또한 번 베로니카의 답변을 통해 절대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 자신을 탓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의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가 그 이미지들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고, 토니가 알게 된 실상은, 우리의 기억으로 점철된 개인적인 역사가 어떻게 분노나 좌절의 감정으로 철저히 윤색될 수 있는지, 또 한편으로, 남자라는 작자들은 왜 이렇게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변함없는 '개자식'인지,라는 통탄과 마주하게 된다.
짧은 분량의 독서이지만, 40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한 개인의 과거와 소중했던 사람과 첫사랑의 강렬함과 쓸쓸함, 그리고 그들이 묵묵히 이겨내야 했던 과거를 뒤섞어놓아서, 장편 분량의 감응을 주는 매우 잘 쓰인 소설이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소설은 의도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승자도 패자도 아닌 채 삶을 그저 살아낸 이들이 기억하는 역사를 무대 위로 올려놓고, 절대 자세한 설명 따윈 생략한다로 일관하는 유니크한 비치 베로니카를 위치시키고, 독자에게 그 의미를 해석하라고 하는 다소 도전적인 형식을 띠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믿음직하지 않은 화자' 토니라는 인물의 내러이션은 그가 무의식적으로 숨기고 있었던 부분과, 나중에 사실을 다 알게 된 후에 의미가 다시 탄생하는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구성의 묘가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소설이다.
이제 의문은 그런 것이다. 과연 에이드리안은 베로니카를 배신하고 그녀의 엄마인 사라의 임신소식을 알았을 때 자살을 한 것인가? 자신과 사라의 아이가 지체장애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결정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철학적 준칙에 따라 친구를 배신했기(?) 때문에 자살을 한 것인가? 이 부분은 영영 알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래서 베로니카에게 40년 만에 연락을 했을 때, '피 묻은 돈'이란 답변이 에이드리언의 죽음 때문인지, 사라의 죽음 때문인지 도무지 설명되지 않고 있다.
왜 반스는 베로니카의 입을 통한 직접적인 설명을 생략, 아니 아예 보여주려 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베로니카의 만용이며, 평범한 중산층 출신 토니에 대한 멸시를 나이가 들어서도 이어가려는 수작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 '토니'가 후반부에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괴롭혔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자신이 저주를 담은 편지를 쓴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것은 뭐랄까 아직 보편적인 윤리관이 자리 잡기 이전, 누군가의 생을 책임지기 이전의 치기에 가까운 행위였고, 물론 그것을 베로니카가 문제 삼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토니가 베로니카를 에이드리언에게 소개한 것은 맞지만 그렇기 때문에 뒤따른 비극적 사건에 대해서 자신이 커다란 책임을 지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반스는 우리에게 토니라는 의심스러운 노인 주인공만 보여주고 베로니카나 에이드리안의 입장은 철저히 숨김으로서 이 심리 스릴러를 그럴듯하게 만들었단 비판도 가정할 수 있다.
인생은 한 명의 사소한 잘못 때문에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연쇄적인 비극이 펼쳐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토니의 평범한 이야기 속에는 많은 부분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채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결국 작가가 의도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가져온 하나의 촌극 정도가 아닐까란 생각도 문득 든다.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는다고 해도 결국 뭔가 빠져있다.
이 소설이 나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까닭에 이후로 줄리언 반스 책들은 이른바 '제목장사'를 하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까지
"않는다"~로 끝나는 종결험 어미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데 "그리 좋게 보이진 않는다"
줄리언 반스가 본격적인 문학과 순문학 사이의 경계에 위치할 만한 작가인 것은 확실해서 추천할 만한 재미-읽는 재미는 갖추었지만, 이 책이 고전의 영역에 까진 위치하지 못할 것같다. 20년 뒤에 독자가 존재할 수 있겠지만 3-40년 후에는 읽힐지 의문이다. 오히려 반스의 초기 소설들이 더 뛰어나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