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줄리언 반스의 2022년 나름 신작은 작가의 고령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닥 나쁘지 않은 소설이다. (현재 79세, 이 작품출간 시 76세)
하지만 원제 <Elizabeth Finch>를 국내에선 스테디셀러가 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식으로 바꾼 제목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라는 우리말 제목은 진짜 거지 같다.
이 소설의 역자 책임은 전혀 없고 편집부에서 이렇게 맘대로 바꾼 것 같은데 정영목 씨가 봐도 고개를 절레절레했을 것이다.
굳이 이 책을 2011년작 <예감은>의 후속작이라고 생각할 건더기는 더더욱 없다.
일부러 찾자면 <예감은>에서 토니의 학창 시절 친구로 비트겐슈타인을 연상케 하는 에이드리언 핀의 성격이, 이 책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핀치와 조금은 그 사유의 엄정함이랄까, 주변에서 보기 힘든 이상적인 주인공이라는 점에선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우연은>은 30대 이혼남이자 뭔가를 진득이 이뤄내지 못하지만 나름 지식 추구욕구가 있는 닐이 성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의를 들으면서 시작된다. 예의 엘리자베스 핀치가 그 강좌의 카리스마적 교수로 그녀는 학생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가 주목적이라 천명하며, 기존의 교육자들과는 전혀 다른 보편성을 보여주는 교수이다. 보수적인 하지만 격식과 우아함이 넘치는 옷과 동작, 거기에 더해 빈틈없고 상식에 매번 저항하지만 논리적인 모순 없는 사유를 품어내는 이상적인 소장학자의 모습.
핀은 그녀에게 플라토닉 한 사랑의 감정과 교수님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경외감을 품으며 그녀와 주 1회 20년 넘게 정기적인 점심 식사를 하며 유일한 친구가 된다. 하지만 말하는 쪽은 늘 닐이고 핀치교수는 닐의 이야기를 듣고 간혹 조언을 주는 위치를 늘 고수한다.
이야기는 핀치가 노령 혹은 암으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고 닐이 핀치의 오빠인 크리스토퍼로부터 핀치의 서류와 책을 물려받게 되면서 중반부로 접어든다.
닐은 핀치의 노트를 살피다 31세에 죽은 J.라는 이니셜의 인물을 궁금해하게 되고 그가
로마의 마지막 황제, ‘배교자 율리아누스‘(공교롭게도 영어식 이름은 저자 줄리안과 같은 Julian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율리아누스에 대한 핀치의 연구를 계속하는 게 스승의 의지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 역사에 대한 주석을 다는 작업이 이 책의 2부이다.
하지만 기존 반스 소설의 장점이었던 역사적 사실과 개인의 역사에 관한 흥미롭고 지적인 산문이 주인공의 드라마 중간중간 등장하는 적절한 양념의 지위에서 소설 전체 주도권을 잡았을 때 소설이 얼마나 지루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달까?
핀치라는 인물은 너무 매력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핀치의 연구대상이나 사유를 이 책을 통해 간접체험할 만큼 고대 로마의 쇠락과 기독교의 전략등이 현재 닐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아무런 전망도 늘어놓지 않는다. 닐은 여전히 핀치의 사생활과 자신이 전유하지 못한 추억을 질투하는 단계에 머문다. 율리아누스로 인한 변화를 현재 세계에서 관망할 수 있는 어떤 비전도 보여주지 않는다.
반스는 늘 이런 식이다. 일부러 인물에 대한 정보를 숨겨가는 방식으로 책의 페이지를 넘기게 하지만 절대적으로 서사가 부족한 이 책에서 독자들은 인내심을 잃게 되고 작게나마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닐의 세계에 대해서도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닐의 핀치라는 인물에 대한 과거를 추적하는 탐정소설 심리 스릴러식의 플롯만 갖춘 체 율리아누스에 대한 상설을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이 책은 몇몇 인상적인 어구들 다시 반추해 볼 만한 구절들이 등장함에도 메인 서사가 너무 빈약해서 2부의 빡빡한 역사논설을 섭렵한 독자에게 너무 허탈한 결말을 던져준달까?
해서 제2의 <예감은>을 기대한 독자를 2 배 더 실망시키는 책이다.
별점은 만점 5개에 다소 부족한 3개
그럼에도 평균이상의 “읽을거리“를 제공해 주는 믿음직한 목소리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