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황유원 역
너무나도 유명한 코엔 형제의 21세기 걸작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이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으로 새롭게 번역 출간되었다. 기존 번역은 이 영화 개봉당시에 출간된 적이 있고, 나도 영화를 본 후 책 내용을 대충 훑어봤던 기억이 있다.
이번 번역자는 시인이자 영미 고전과 현대작을 두루 번역하고 있는 황유원이다.
나는 내가 이 영화에서 감탄했던 장면들 위주로 책을 빠르게 훑어봤다. 매카시가 이 책을 소설을 위해서가 아닌, 영화 시나리오로 썼다는 사실이 새롭다. 그렇기 때문에 문체는 엄청나게 건조하며 사건과 행동 위주로 간략하게 나열되어 있다. 대사들은 따옴표 없이 이어진다. 이 영화의 장면들이 너무 눈에 선연하게 기억나기 때문에 이 다소 복잡하고 꼬여있는 장면들을 코엔 형제가 얼마나 잘 구조화하고 앵글 안에 담으려 했는지 감탄하게 된다. 시나리오도 시나리오이지만, 그것을 이미지-영상으로 해석하는 능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
성실한 전직 군인 출신의 카우보이 모스
인과율의 필연성에 사로잡힌 괴물 같은 청부살인마 시거
폭력과 살인의 수위가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세계에서 이제 미약한 자신을 탓하며 경험과 독백으로 이들의 자취를 뒤쫓기에 바쁜 보완관 벨
이 세 명의 인물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벨의 문학적인 독백은 책을 읽을 맛이 나게 해 주고(또는 모스와 시거의 서스펜스 장면으로부터 한숨을 돌리게끔 해주고)
영화에서 비중이 작았거나 기억나지 않았던 조연들의 습성과 대사들 행동들이 추가되면서 더 풍부한 감상의 영역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주인공들의 각각의 의지와 그 행위, 그리고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결말로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이 등장하는 각각의 사건을 관조하는 우리들은 마치 운명의 일격을 기다리거나 관망하거나 또는 반격하는 그 당사자인 것처럼 각가의 장면 앞에 서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픽션이 주는 놀라운 순간 중 하나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라는 것은, 유명한 영시의 인용구를 제목으로 한 것이며, 대략, 이제 노인만이 가능했던 경험과 지식으로 풍성했던 한 시절이 지나갔다는 뜻으로 원문에서는 쓰여있다.
그것은 새로운 새대 혹은 새로운 악의 등장으로 과거에 인정받고 존중받았던 어떤 지식이나, 인물, 습성 등이 깡그리 잊힐 위기에 놓여있다는 뜻인 것도 같다.
또는 과거의 통제 가능했던 악이 지금의 통제 불능한 악으로 더 몸집이 커져 더 이상은 감당하기 어려운 형태가 되었다는 것과도 상통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로운 악의 모습에, 그 악과 정면 대결하는 필멸의 존재에 이끌리고, 그 둘을 또 다른 관점으로 관조하고 뒤쫓는 침착한 시선을 바라고 기다리고 조만간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이란 예감에 몸서리친다.
매카시의 후기 작품들은 아직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지만, 언젠가 기운이 닿는 대로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