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정돈된 순서에 따라 단어들을 모아요

<나는 드라이어로 내 속눈썹을 말린다>, 지르카 엘스파스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다운로드 (44).jpg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볼 때 장점은 간혹 외국 시인들의 번역본을 맘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 위주의 독서에서 결핍될 수 있는 여지를 낯선 번역어들이 채워준달까.


하지만 이 낯선 95년생, 독일어를 사용하는 여성 시인의 이 시편들은 지나치게 한국 젊은 시인들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작가의 말을 보면, 특히나 김혜순 시인의 시집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신선하고 놀랍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집이라는 장르에 한정한다면 대한민국의 K-Poetry는 이미 세계적이다.


절대적인 숫자에서만 본다면, 젊은 MZ세대 인구비율 중에 이만만큼 많은 시와 시집을 출간하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할 것이니, 그런 시단의 선두에서 있는 김혜순 같은 현대시인들의 번역본이 많은 서구권 언어로 번역되어 서점에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 새롭지 않은 것이다.


하여튼, 지르카 엘스파스의 시집도 그런 면에서 글로벌한 보편성을 갖추고 있는데,


일단 크게 4부로 구성된 시집의 첫 부분의 장시-(혹은 단시의 묶음집)를 편편이 보고 있으면, 지금 젊은 세대의 일상성이나, 소소한 결락의 감정, 진부함을 새롭게 포장하는 언어의 발굴 능력, 느낌과 아포리즘 중간 어딘가를 지향하는 감수성, 담배를 피운다는 식의 작고 해로운 자본주의의 금단현상들에 관한, 절제된 일기와 같은 느낌적인 느낌들이 전해진다.


전반적으로 준수한 언어들이며, 막힘없이 읽단 쉬 읽힌다는 가독성을 갖춘 시집이다.


그래서 더 한국적인 느낌이 든달까?


묘한 여지를 남기는 그런 시집이다. 확실한 것은 설렘이나 비탄이나 망설임보다는, 관조와 유머와 조화로움에 대한 열망과 같은 긍정적인 위트의 차분한 전개 같은 나름의 문체와 접근법을 갖추고 있단 생각! 그런 응축과 압축된 염원같은 희미한 긍정성이 장점인 시집이다.


꾸준히 영미권 현대의 클래식이라고 할 만한 작가들의 시집들이 출간되는 시점에, 일본 젊은 시인들도 그렇고 독일어권의 젊은 시인들의 작품들을 짧은 시간동아니나마 읽는 호사를 누렸다고 할까.


"지금은 내가 시간을 믿고 기다려 볼 때

어쩌면 조금은 앞으로 밀어줄 수도"


매거진의 이전글너의 인생이 진심으로 퀴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