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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18. 2024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유머 있음, 픽션임)

내가 아직 끊지 못하는 몇 가지 버릇 중 하나

어느 장소에서나 나를 기다리는 것들

주변을 둘러보다 없으면 아쉬워하는 것들 중 하나가 커피 자판기다


나는 동전을 좋아할 가능성이 있거나

주머니 속에서 뮤트 된 금속 찰랑거림에 익숙하거나

바지 주머니에 손을 자주 넣고 걷는 쪽에 속할 것이다


400원짜리 고급 커피와

300원짜리 그냥 일반 커피

(프림, 설탕은 꼭 다 들어가야 함)


선택은 이미 끝났다

둘 다 마셔보려고 천 원짜리를 어렵게 준비했다

짜잔


고급 커피가 더 달다

더 달면 일반적이지 않은 것

(일반적이지 않고 선택의 비용이 추가되는 걸 더 우리는 더러 고급이라고 착각한다)

나는 일반적인 단 맛을 원한다

(그게 미덕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맛이나 가격 차이 보단,

고급은 왠지 돈지랄 같고 사람들이 눈치 보니깐

더군다나 고급 커피가 든 일회용 컵을

인스타그램에 찍어 올려도 아무도 못 알아챌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동전을 짤랑거리며 이곳 도서관에 자주 방문해도 일회용 종이컵에 셔터 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은 아닌 것이다!

(또한 도서관 책이라는 게 쪽팔려서 인증샷을 찍을 때 바코드를 가리고 찍거나, 나를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나를 염탐할 수 있으니 도서관 이름을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하는 시간 낭비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누가 자기가 읽은 책을 sns에 찍어 올릴 생각을 하는지?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들은 많으니, 각자가 알아서 조심할 수밖에! )


단 것을 좋아해서도 아니고 산책이 매번 시간을 허락하진 않지만

도서관에 가서 책은 빌렸는데 커피를 마시지 않고 오는 것에는 살짝 아쉬움을 느낀다


주머니 속 동전 무게는 줄고

가방 속 책 무게는 늘어난다

빈 속에서 단 맛은 불쾌한 가스를 만들고

텅 빈 머리엔 바람 빠진 이야기들이 아우성 되다 새로운 스토리가 들어오면 슬쩍 배출된다


누군가 우리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놀랄 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아무렴) 어딘가 엉망이 되면 내 주변이라도 깨끗이 치워야 하기 때문인 것도 같은데,

맥락과 맞지는 않지만 암튼,


줄어든 동전 무게보단 책 한 권이 더 무겁다 하지만

내 보폭은 충분히 일정하고 발 디딜 때 튼튼한 소리를 내며 걸을 수 있다 (줄어든 동전과 어머니 감사합니다!)


버리기 곤란한 종이컵은 화장실에서 씻어서

물 컵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목말라 죽겠는데 더러운 손으로 납작한 봉투형 종이를 벌리거나, 입술이 닿자마자 눅눅해져 버릴 것 같은 딱딱한 미덕을 저버린 짝퉁 종이컵들, 그 형태만 빌려온 것들을 내가 얼마나 증오하는지!

정수기 근처 쓰레기 통에서 미사용 납작 봉투 수십 개가 버려져 있으면 다들 내가 한 짓이라 생각하길!


내가 아직 끊지 못하는 버릇 중 하나,

내가 밸런스와 걸음걸이를 유쾌하게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

오늘도 하나의 자판기를 상상하며 문을 나선다


오, 위대한 자판기 관리인이여

그대에게 섬섬 영광 있으리!


추신: 국산차 카테고리의 “복숭아쥬스”와 “핫초코”도 300원의 선택지로 자리하고 있다 (지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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