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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19. 2024

동물의 웅장한 행렬을 빛내는 현란한 패턴

기욤 아폴리네르, <동물시집>


시인 아폴리네르와 화가 라울 뒤피가 협업한 시집이다

세기초 낭만적인 예술의 한 사례로


시인은 오프레우스의 목소리로 분장해서 직접적인 코멘트를 달기도 하고

뒤피의 판화 자체에 대한 감탄을 내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독교적 요소와 일반적인 우화적 수준에서

동물의 자태와 행동을 우의적이며 자연주의적 기교로 해설한다  


인간과 친밀한 동물들에서 출발해 악랄한 곤충들,

우울하고 악마적인 물고기들-낙지 편에선 식욕이 돋는데- 해산물들…

그리고 새들과 다시 동물로 마무리된다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압축적인 시구들의 감각적인 배열에 주목해야 하지만 더 빛나는 것은

라울 뒤피의 판화를 뜯어보는 것이다


인상주의 회화부터 야수파, 입체파를 두루 섭렵하며 나아가 도예나 태피스트리 인테리어와

패션 디자인까지 영역을 확장한 전방위 예술가 라울 뒤피가 그의 40대 원숙한 기예로 해석한

판화 속 동물의 모습은 때론 유머러스하고 때론 웅장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주요 대상인 동물의 자태를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배경의 묘사에 있다

오밀조밀한 디테일과 훌륭한 패턴의 새로운 표현을 쉽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가 왜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작업을 이후 이어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뒤피는 당시 혁신적인 물감을 활용한 투명한 수채화 기법의 유화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늘 깨알 같은 디테일과 자유로는 색들이 가득해

대상과 관람자 모두에게 유쾌한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마치 한적한 바닷가의 따스한 태양과 여유로운 공기의 기분 좋음이 전체적으로 깔려 있다고 할까


한편 아폴리네르가 친절하게 주석을 달고

역자인 황현산의 꼼꼼한 옮긴이 주도 꽤나 유익한데

우리에겐 12 간지의 동물들이 20세기 초 대중에겐 또 어떤 이미지로 해석되었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책의 판형인데

그림을 조금 더 키우고 원문은 뒤로 뺀 채로

그림 바로 밑에 시를 배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더 큰 판형의 그림이 배치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튼, 세기초 풍요로운 날들에 이뤄진 감각적인 예술가들의 협업과 낭만성이 그득 고여있는 소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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