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실남실 Mar 20. 2024

최근 읽은 희곡 중 최고

티아구 호드리게스, <소프루>


두 편의 꽉 찬 희곡이 수록된 포르투갈의 천재 희곡 작가-예술감독이 쓴 책이다


뭐랄까 기존에 읽은 희곡들의 지난한 또는 전형적인 틀을 벗어난

방송극에 가까운 “오디오”를 최대한 부각한 그런 작품이다


국립극장에서 프롬프터(작은 목소리로 대사를 알려주는)를 맡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기획된 표제작 “소프루“

뜻은 “숨”이라고 한다


21세기 희곡은 이런 것이구나!

희곡이란 이렇게 전개되어 나가는구나를 느낄 수 있는 긴박감 넘치면서 순도 높은 문학성과

복잡한 듯 보이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구성이 빼어난 마감을 이루고 있다


프롬프터라는 직업적 시선을 뛰어넘어 무대의 예술감독과 또는 배우들을 관찰하며 내뱉는 서사적이고도

충실한 문학적 대사들은 거의 시어를 나열하는 듯 감동적이며 정서적인 울림이 그득하다


소프루와 함께 실린 ”그녀가 죽는 방식“은 더 골 때리게 아름다운데, 감정이 메마른 4-50대에게 추천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부분 부분 책의 직접 인용이 연극의 3-40프로 대사를 차지하는데

이렇게 적절할 수 있냐 싶을 정도로 완벽한 구성미를 가지고 있으며


사랑 타령이 맨날 똑같지 생각했다면 방심하다가 큰 코다 칠 수 있는 내용과 접근이다

‘사랑’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이었지 하고


관객에게 돌아오는 감흥과 정서적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에 이런 글들을 읽으면 한동안 멍해질 수밖에 없달까


무엇보다 대사의 현실성과 중의적인 표현으로 인간 심리를 설명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왜 무대 연극이란 장르가 계속 전개되어야 하는지와 더불어 ‘인간’ 존재의 내부에 잠재한 내면 혹은 그림자들이

어떻게 살아 움직여 ‘인간’의 심층에서 표현되어야 하는지 따위를 지각하게 하는


연기자뿐 아니라 독자-관람객의 마음을 울리게 하는 그런 종류의 예술이다

번역도 여태 본 역자의 작업물보다 뛰어난 느낌이다



이전 03화 동물의 웅장한 행렬을 빛내는 현란한 패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