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에븐슨,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브라인언 에븐슨
낯선 작가인데 굉장히 지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다
무엇보다 최소한의 정보를 쌓고 쌓아서 마침내 긴장의 나사가 풀리는 지점까지 독자를 인솔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다채로운 장르적 배경(초자연적 스릴러, 코스믹 호러, 낯선 존재-비인간의 등장, 디스토피아적 세계, 또는 사이코패스 스릴러, 기묘한 일상적 공간의 광증과 편집증, 사이보그 스릴러, 러브크래프트적 그로테스트)을 가져다 쓰고 있지만 결국 스릴러라는 기본기에 충실한 문법을 구사하며 화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이를 따라가고 있는 독자의 정보량이 일치하도록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하달까
때문에 우리는 맘 편하게 몸이 저릿저릿한 스릴을 즐길 수 있는데,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부분이야말로 공포라는 감정의 시작점이란 걸 알 수 있다
이야기 자체의 잔혹함 또는 기이함 혹은 미궁을 탐험하는 느낌들에서 오는 불확실한 실존의 감각이 꽤나 예리하며, 집도할 곳을 알고 메스를 쥐는 외과의사의 정확성을 가지고 플롯을 구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브라이언 에븐슨은 의도적으로 굉장히 낯선 이름들을 구사한다. 영어권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이 알법한 이름이 아니라, 마치 고대 이집트 또는 원시 민족의 기록 같은 데서 나왔을 법한 북유럽 느낌도 아니고 라틴 쪽 이름도 아닌 단순하지만 외계어적 어감이 있는 이름들을 의도적으로 나열하는데, 이 이국적인 이름이 자아내는 효과들 또한 텍스트의 인상을 강화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
표제작 <세상의 매듭을 풀기 위한 노래>는 현대적 환상 특급의 한 편이라고 봐도 될 만큼 완성도 있으며, <탑>, <얼룩>, <마지막 캡슐> 같은 SF적인 배경의 소품들도 완성도가 좋다. 특히 <마지막 캡슐>은 ”데드 스페이스“의 초반 에피소드의 일부 같기도 하다. <영혼의 짝>에서 보여주는 기이한 연민 또한 인상적이며 다분히 영화적이다.
<방랑의 시간>과 같은 단편은 다분히 문학적이며, <안경>이나 <시선>은 스티븐 킹의 호러를 연상시키지만 더 영리하다. <파리들의 거품>은 뭐랄까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이 떠오를 만큼 완성도가 높고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 외 나머지 단편들도 고루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유머 코드나 어설픈 완성도의 세계관이 아닌, 공포 영화 문법에 익숙한 클리세나 코드를 딱 공포와 비현실의 표면까지만 드러내서 나머지는 상상의 영역으로 가져가게 한다.
브라이언 에븐슨의 번역된 다른 책들은 유명한 공포 게임 IP인 “데드 스페이스”의 소설판 <데드 스페이스-순교자>와 <데드 스페이스-기폭제>가 있다고 검색된다
그의 장편들도 번역되었으면 하는 기대와 궁금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