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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22. 2024

압도적인 서사, 우아한 관용의 파토스

루드밀랴 울리츠카야 <소네치카, 스페이드의 여왕>


현대 러시아 문학의 거장인 루드밀랴 울리츠카야의 중편 <소네치카>와 <스페이드의 여왕>이 실린 짧은 책이다.


책은 짧지만 장편 소설을 두 권 읽는 듯한 여운을 준다.


<소네치카>는 압도적인 명작인데, 80년대 마술적 리얼리즘 분위기의 전지적 화자가 등장해 공손한 시선을 내내 유지한 채, 만연체 문장을 통해 캐릭터를 조망하는 기법을 적극 활용하는데, 무척이나 독자를 숨죽이게 만드는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와 미래의 시점이 교차하면서 주인공의 선택이나 중요한 사건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기예를 자유자재로 부리면서 인물의 묘사와 재현에 방점을 찍는 식이다. 고전 러시아 문학의 거장들의 미덕을 그대로 흡수 변용하면서도 당대 새로운 서사의 움직임을 유감없이 흡수해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독서 말고는 평생 사랑해보지 못한 여성 ‘소냐’의 느린 시간대에 마치 ‘벼락’처럼 등장한 그의 예술가 남편과의 만남이고 그 이후의 생은 그녀의 사랑스럽지만 무엇하나 그녀를 닮은 것 같지 않은 딸과, 새로운 의미의 가족이 된 여성 ‘야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예술가적 취향과 재능을 타고난 주변 인물들 속에서 움츠러들 만도 한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우리의 사랑스러운 ’소냐‘의 이야기는 소설의 굵은 줄기이고, 그 옆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몰입하게 되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풍성한 서사를 부려놓는다. 인간의 예술과 사랑을 각각의 카테고리로 담아 삶의 의미를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격동의 역사 속에서 꿋꿋하게 생을 이어가는 이들의 행동을 복잡한 감정 속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아슬아슬함이 있다.


한편 <스페이드의 여왕>은 푸시킨의 단편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뭐랄까 영상미가 넘치는 단편으로 러시아적 구태와 환멸 그 자체인 노파를 중심으로 ’아비‘없는 3대의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역시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인물의 성격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점점 구체화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두 편모두 중심 캐릭터는 여성이지만 ‘여성’에 국한되지 않은, ‘인간’, 러시아적 인간을 겨냥하고 있으며, 그들이 구성하는 가족의 이야기는 변화와 발전을 종용하며, 러시아라는 사회 체제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고 읽어햐 한다. 적극적인 반항이나 저항적인 의미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인물에 동의하면 생각을 이어나가게 되면 연민에 쌓이게 되는 문학의 특성은 그 삶의 조건들을 되짚게 하는 것.


울리츠카야는 2012년 한국 박경리상을 수상하면서 그녀의 책들이 꽤 부지런히 번역되어 있기에 나처럼 <소네치카>를 통해 입문한 독자들은 내내 즐거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러시아 문학은 늘 러시아적인 세계를 품고 있고 늘 예기치 못한 감동을 주곤 한다. 뭐랄까 독자로서 굉장히 부럽고 늘 감탄하며 경이감에 찬 시선을 갖게 한다.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태도가 러시아적 풍토에는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 거칠지만 단단한 스타일로 올곧게 질주하는 작가들이 그 세계 어딘가에는 잘 숨 쉬고 글을 쓰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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