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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30. 2024

끈적이는 도시와 아련한 젊음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 <도시의 마지막 여름>

어떤 책들은 독서가 끝나고 한참 동안 그 여운에 달콤한 뒷맛에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한 참은 아쉬운 그런 종류의 책들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의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그런 종류의 책이다.     

70년대 이탈리아의 하루키 같다고나 할까? 하루키의 초기 소설에서 보는 영문 번역투 문장보다는 훨씬 더 이탈리아적인, 정오의 태양과 축축하고 끈적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안고 있어서, 이 책이 젊은 만큼,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역시 젊어짐을 느낄 것이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할매의 추천사는 언제나 옳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사실 읽은 지 한 달은 넘어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작가의 젊은 시절 분신이 확실한, 세속적인 삶의 무대를 종횡무진 횡단하지만 그가 어울리는 사교적인(보다 부르주아적인) 친구들과 어울리기엔 정신적 댄디즘밖에 내세울 수없는 날 선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에 어울릴만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다. 마치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 같은 통통 튀는 매력을 가진 여주인공의 묘사는 내내 감각적이게 표현된다. (위대한 개츠비 같은 소설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할 수 없는 여주)   

 

이들은 무더운 기운이 가시지 않는 도시의 변두리와 식당을 탐색하면서 엇갈리며 때로는 오그라드는 대사들을 남발하는데 첫사랑은 실패라고 했던가, 그들의 결합은 꽤 만족스럽지 못하고, 그러한 미숙함들이 자신들의 사랑에 대한 환상에 매번 못 미치기 때문에 그 실패를 자신의 몫이라 자책한다.      

     

미숙하고 젊은 연인들이 겪는 실패한 사랑담 그리고 소설적인 마무리가 아주 전형적이지만 그 과정들과 캐릭터들은 여러 현대의 사랑 이야기들과 닮아서 애착을 느낄 수밖에 없는 스토리인 것이다.      

     

그렇게 읽은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뭔가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스토리인 듯한 기시감을 전해주는 야릇한 책이다. 그것은 우리의 젊음이 그런 형태로 과거에 머물러 있었으며, 마치 그 시절 아우라 속으로 잠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이 소설의 분위기가 재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이처럼 어떤 분위기다.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생동감 있게 설득력 있게 전시하기란 엄청난 재능과 기교 그리고 일말의 진실을 원하는 듯하다. 그것은 가상이지만 읽는 독자를 잠시 동안 그 안에서 살아 돌아다니게 만든다.   

후에 방송작가로 활동했던 작가의 이력을 볼 때 이 재발견된 컬트 소설은 영원히 젊은 어떤 종류의 상징을 띄면서 앞으로도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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