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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Feb 21. 2018

그저 넓다란 질문지로 남아

<초행>

 

 

 지영(김새벽)과 수현(조현철)은 7년 동안이나 연애 중에 있다. 다소 나른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의 관계를 보고 있으면 사랑의 시작이 선물해주는 설렘도, 세금처럼 함께 찾아오는 권태의 아슬아슬함도 이들에겐 그저 몇 세기전의 일처럼 받아들여진다. 제법 연애의 높은 문턱들을 수월하게 넘겨온 듯 보이는 두 사람에게 어느 날, 각자의 집으로 가야만 하는 사정이 생기고야 만다. 그러면 응당 당연히 따라붙는 손님. 결혼이라는 화두가 그들 앞에 놓이는 셈이다. 차를 모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네비게이션이 종종 말을 듣지 않는게 자주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그 어떤 해답도 지름길이 될 수 없는 상황임은 자명해 보인다.   

 

 <초행>이 조금 특별한 영화로 다가오는 까닭은 간단하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과 유관하기 때문이다. <초행>은 서울시내 한복판에 맨몸으로 던져진 두 남녀의 연애담을 보여주면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이다지도 초조한 이유를 들여다보는 민감한 촉매나 다름없다. 때문에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서사는 롱테이크가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져, 매 쇼트마다 답답함이나 불안과 같은 공기가 배경을 감싸고 있다는 착각마저 선사한다. 한 가지 더, 이를 멀찌감치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종종 <초행>을 다큐멘터리와의 경계에 놓이게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 그리 건조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제법 우스꽝스러운 상황 속에 던져진 실없는 유머 또한, 영화 속 인물들 각자에게 내재된 불안과 함께 어우러져 극영화적인 리듬을 지속적으로 양산해내기 때문이다.     


 <초행>을 또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지점은 영화 속 등장하는 두 어머니와 지영의 관계에 주목해보는 것이다. 영화는 지영이 어머니들과 한 공간 안에 놓이는 장면을 제시하면서, 마치 독립된 공간이나 일종의 안식처와 같은 유대공간으로 은유되도록 조성한다. 두 어머니가 결혼에 대해 각기 다른 견해를 보이면서도 지영과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까닭도 거기에 맞닿아 있을 것이다. 두 어머니 모두 지영과 수현이 안고 있는 고민의 해답지가 될 수는 없지만, 위태로운 길을 지나는 두 사람에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지지대처럼 보인다는 점이 <초행>이 드러내고자한 지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광화문 한복판에 촛불을 든 두 사람이 어디로 갈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장면은, 알랭 바디우의 말처럼 “사랑이란 서로를 마주보는 것이 아닌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란 명제를 저절로 떠올리도록 한다. 포스트 촛불시대라는 표현이 꽤나 유치하게 느껴지지만, 이 영화만큼 육체의 경험으로 이를 환기시키는 영화도 드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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