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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Jun 05. 2018

하이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미세스 하이드>


 지킬(이자벨 위페르)은 고등학교 물리교사이다. 그녀는 학생과 주변인에게 인정받지 못해 자주 우울해 한다. 번개가 치던 어느 날, 지킬은 자신의 실험실에 있던 중 벼락을 맞고 쓰러진다. 깨어난 이후 지킬의 몸엔 갑작스레 전류가 흐르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지킬은 이전과 묘하게 다른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지킬의 모습에 주변인들은 당황스러워 한다.

 <미세스 하이드>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 속 지킬박사는 자신의 인격을 선과 악으로 분리하고자 실험을 반복하고, 종국엔 사악한 본성인 ‘하이드’에게 내면을 잠식당한다. 영화 <미세스 하이드>는 지킬이란 인물의 우울과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자아 분열로 이어진다는 점에 원작과 가장 큰 접점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분명 쉽지 않았다. 가장 당혹스러운 지점은 지킬의 선택을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온몸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지킬은 밤이 되자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단순한 자아분열로 보기에 지킬은 자신의 의지로 변할 수 있었고 또한 원작과 달리 지킬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눈길이 가는 지점은 다음이다. 그것은 영화의 결말부에 지킬이 그녀 자신을 직접 '하이드'라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지킬의 선언으로 인지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다. 그건 개인의 내면이 폭력적인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 될 때 몰락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체벌 금지 규정을 근거로 교묘하게 지킬을 조롱하고, 교장은 이들로부터 겪는 그녀의 고통을 외면하기 바쁘다. 능력 없고 교양을 뽐내기 바쁜 지킬의 남편은 그녀가 단지 우아한 아내로 존재하기를 원한다. 결국 지킬은 어디서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기에, <미세스 하이드>는 존재의 위기를 겪고 우울에 빠진 개인의 심리가 파괴욕으로 치닫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몰락하는 건 지킬 개인의 내면 뿐 아니라 영화가 묘사하는 교육 시스템이다. 그녀가 근무하는 랭보 고교는 아르튀르 랭보란 시인의 이름을 딴 학교다.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의 한철>과 같이 고통과 폭력, 지옥을 단순 악으로만 재단하지 않고 자유와 연결 지은 랭보와 달리, 오늘의 프랑스 교육 현장은 선악의 분리처럼 이공계와 인문계, 남녀가 분리돼 있는 단절의 공간 탈바꿈 됐다.


 이는 카메라의 시점과도 연결되는데, 지킬의 시선을 따라가는 카메라 프레임 바깥엔 언제나 사람이 존재하지만, 지킬은 그들을  지나치거나 혹은 보지 못한다. 스스로에게만 집중해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시선의 반복은 무관심과 단절을 드러내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여기에 획일적이고 뻔한 수업 내용은. 영화 속 지킬을 비롯한 교사들을 비루한 사람들로 비춘다. 학생들에게 교실은 단지 선생을 조롱하며 즐거움을 얻는 놀이 공간으로만 비춰진다. 따라서 이 영화는 몰락한 지킬의 내면과 함께 타락한 교육의 현장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런 가운데 지킬이 시스템에 던진 혼란이 묘한 아이러니로 이어진다는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 지킬은 교육 지침을 어기고 이공계에 인문계 수업 방식을 도입하자 장학사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교사가 학생을 대할 땐 모두를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말릭이란 학생에게만 편애를 하자마자 학생들은 그녀에게 인정 받기위해 노력한다.  결국 지킬은 교육부로부터 상까지 수여받는다. 교육 구조에 혼란을 야기한 문제아이자 반항아가 일순간 교육계의 잔다르크로 여겨지는 셈이다.


 그러나 지킬은 상을 받지 않는다. 바로 다음 장면에 그녀는 스스로를 ‘하이드’라 명명한다. 폭력적인 환경과 구조로부터 메달을 수여받는 순간,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악의 근원으로 규정지은 것이다. 결국 요점은 수십만 볼트가 흐르는 전류의 몸을 가진 게 아니다. 그것을 폭력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타인의 지지가 얻어질 때 비로소 악은 탄생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미세스 하이드>가 정의하는 ‘하이드’의 탄생이다. 따라서 단순히 지킬 개인의 일탈로 끝나지 않고, 제자인 말릭에게 계승되며 마무리 된다. 이 결말은 지킬이 아닌 그 누구도 하이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는 점에 분명 날카로운 질문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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