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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Apr 26. 2018

어제가 오늘의 나를 지배한다 느낄 때

<클레어의 카메라>


 


 프랑스 칸 영화제로 출장을 간 만희(김민희)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란 이유로 사장인 양혜(장미희)로부터 갑작스러운 해고 통지를 받는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친구를 따라 칸으로 온 클레어(이자벨 위페르)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닌다. 한 순간직장을 잃은 만희는 복잡한 심경을 안고 정처 없이 칸의 거리를 배회하는데, 우연히 그녀의 주변을 지나던 클레어는 만희의 공허한 표정에 매료돼 그녀를 촬영하기 시작한다. 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급격히 친해지게 되고, 서로의 과거에 대한 이야길 나누다, 사실은 서로가 같은 장소에 있었고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걸 알게 된다. 기묘한 인연에 신기해하며 가까워진 두 사람은 함께 칸의 밤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최근의 홍상수 감독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간에 대한 그의 감각적 인식과 재현이다. 홍상수 감독은 현재와 과거가 선형적인 구조 아래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마치 둥근 원처럼 공존하고 있다 믿는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과거에 있던 어떤 사건을 끊임없이 상기한 채로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를 보인다. 인물의 고독하고 복잡한 내면을 대변하듯, 영화의 서사구조는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채로 배열돼 있으며, 타인으로부터 과거에 들었던 말들이 주인공의 오늘에 침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영화를 본 관객은 나름의 기준을 안고 사건의 순서를 이리저리 조립해 보지만, 결코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될 수 없다. 이것이 최근 홍상수 영화에 두드러지는 형식적 특징이라 볼 수 있기에 여기에 주목해 본다면 분명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이다.


 <클레어의 카메라> 또한, 시간에 관한 형식적 실험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특히 클레어가 사용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이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카메라는 눈앞의 사라져 가는 순간들을 담을 수 있는 도구이고, 그중에서도 폴라로이드는 가장 빨리 이를 현실에 재현해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얘기했듯이, 사진은 촬영자가 바라본 그 시간의 기록임과 동시에, 순간 자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도구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현실은 매 순간 과거로 이행하는 중이며, 결국 인간의 삶은 과거로부터 탈피한 뒤 곧장 과거로 종속되고야 마는 일련의 흐름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나는 누군가의 사진을 찍고 나면 그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돼있다는 걸 안다.”란 클레어의 극 중 대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볼 수 있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겁니다.” 어떤 이유로 사진을 찍냐는 만희의 질문에 클레어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 말을 들은 만희는 도통 납득할 수 없는 해고 사유의 원인을 찾아, 천천히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클레어 또한 자신의 남편이 지병으로 사망했단 사실을 만희에게 고백하면서, 자신이 사진을 찍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어쩌면 <클레어의 카메라>는 서로의 오늘을 긍정해줌과 동시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희망에 관한 영화라 볼 수 있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이 영화의 배경음으로 반복해서 쓰였듯, 내면의 봄도 추운 겨울을 버텨내야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혹 우리에게 갑자기 던져진 원인 모를 불행이나 타인이 내뱉은 말들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그 불행의 원인을 찾아 홀로 괴로워하기보단, 당장은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그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도 중요해 보인다. 적어도 이전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걸 반복할 순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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