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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May 13. 2018

시궁창 같은 삶에도 우린 모두 영화를 보니까

<원더스트럭>

 1977년 미국 중서부의 작은 마을, 소년 벤(오크스 페글리)은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미셸 윌리엄스)를 잃고 친척과 함께 사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가신 어머니의 방을 뒤지던 벤은 우연히 ‘원더스트럭’이란 책 한 권과 어느 서점의 주소를 발견한다. 책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존 보이드)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고, 서점의 주소로 미뤄볼 때 그곳엔 아마 아버지가 살고 계신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벤은 갑작스레 벼락을 맞고 만다. 이 사고로 그는 귀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 이르지만. 그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벤은 아버지를 찾아 뉴욕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동시에 영화의 시간은 1927년 미국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유사한 이야기가 흑백 무성영화로 그려진다. 엄격한 아버지의 통제를 받던 소녀 로즈(밀리센트 시몬스)는 자신이 선망하는 여배우의 공연 기사를 보자마자 무작정 집을 나와 홀로 뉴욕으로 향한다. 그녀 역시 벤처럼 귀가 들리지 않는 농아다. 서로 다른 시간 속 비슷한 사연을 가진 두 소년과 소녀는 영화 말미에 이르러, 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 뉴욕이란 거대도시 한가운데 놓인 이들은 서로가 만나고자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 기묘한 운명을 지닌 두 사람은 대체 무슨 관계일까.

브라이언 셀즈닉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원더스트럭』은 줄거리 그대로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작품이다. 상처를 입고도 희망을 놓지 않은 인물들이 만나 서로의 오늘을 긍정해주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런 원작의 태도를 반영하고자 셀즈닉이 직접 각본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원더스트럭』의 연출을 맡은 토드 헤인즈는 우리에겐 『캐롤』로 익히 알려져 있으며, 감각적인 연출기법과 다채로운 색감의 활용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 세계는‘타인의 삶을 살아보기’ 짧게 요약할 수 있다. 토드 헤인즈는 성 소수자와 장애를 안고 있는 인물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놓인 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조망하면서, 그는 관객에게 일상 속 만연해 있는 폭력이나 차별적 요소들을 자각하도록 한다. 

밥 딜런이란 한 인물을 여러 명의 배우가 연기한 『아임 낫 데어』처럼, 하나의 고정된 대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 역시 그의 작품 속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원더스트럭』에서도 로즈의 서사를 다룬 무성영화 형식을 지켜보고 있자면, 이런 그의 시선과 태도를 함께 엿볼 수 있다. 『원더스트럭』 속 무성영화는 단순히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아닌, 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매개의 역할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더스트럭』엔 영화란 매체로 타인의 삶을 잠시나마 살아보도록 하는 체험적 성격의 의미가 담겨있다.

『원더스트럭』은 또한, 감독이 고수하는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시선이 영화란 매체의 특성과 만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영화는 스크린에 투영된 잔상을 마주한 채로 타인의 삶을 잠시나마 감각할 수 있는 일종의 통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청력을 잃은 벤에게 이입하게 될 때, 우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내하기 힘든 일인지, 이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나가는 벤과 로즈의 삶을 보며 장애란 인생에 닥치는 불편한 조건들 중 하나일 뿐, 그것이 삶 전체를 몰락시킬 순 없음을 깨닫게 된다. 홀로 뉴욕에 온 벤에게 도움을 주며 친구가 된 제이미(제이든 마이클)는 이런 작품에 대한 감독의 의도를 전달해주는 역할로 보인다. 장애를 겪은 이들을 단순히 동정하는 것이 아닌, 그저 그들을 존재 자체로 대하며 친구가 돼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제에 입은 상처를 감내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누군가의 아픈 과거를 달래주고 싶거든 그의 오늘을 긍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작품의 주요한 메시지처럼 보인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구절처럼, 『원더스트럭』이 전하고자 하는 지점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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