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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Aug 13. 2018

문재인 정부 시대의 CJ영화

<공작>

 <공작>은 문재인 정부 시대의 CJ영화다. 우리는 이 제작사가 불과 2년 전 <인천 상륙작전>을 만들었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호국 영정을 잊지 않겠다 마무리하며, 반공 주의 시절 선언문을 읊조리던 제작사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시대 흐름에 편승하고자 하는 얄팍한 기회주의가 숨겨져 있는 셈이다.

 북파 공작원 흑금성은 첩보 활동을 할 수록 자신의 임무에 의문을 가진다. 바로 그가 상대하는 대상이 점점 모호해져가기 때문이다. <공작>의 서사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이 일종의 혼란으로부터 비롯된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양분되는 이데올로기 질서가 권력자들의 선전 도구에 불과하며, 실제 역사는 자본주의의 맥락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몸소 체험해 나가기 때문이다. 이는 주인공 개인의 내적 갈등의 씨앗이 된다. 여기에 실제 역사가 갖고 있는 힘이 더해져 영화 속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적이라 여겨져왔던 대상을 대면할 수록 주인공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심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분명 대화와 말의 영화이며 자신이 믿어 온 가치관과 상징들이 파괴될 수 밖에 없는 장르 영화다. 상호 간 말의 오고 감 속에 속임수와 거짓말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동력으로 작동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이 영화의 장점이 아니라 이 장르 영화를 다룰 때 당연히 필요로 하는 덕목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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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표현방식은 주제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낡았다. 인물의 대화 장면마다 과한 클로즈업과 분절된 쇼트로 관계의 단절을 말하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 이 영화는 지나치게 쇼트를 낭비하며 느와르의 분위기와 극의 긴장을 하염없이 주입시킨다. 러닝타임이 2시간을 훌쩍 넘을 필요가 없는 영화인데도 그놈의 폼 이 문제다. 그건 서사가 진행될 수록 긴장감이 고조와 함께 피로감이 동반될 수 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여기에 중저음의 대사 톤과 클래식 선율이 가미된 전형적인 충무로 아저씨 느와르일 뿐, 배우들의 연기는 자신의 대표작들을 모방하는 데 그칠 뿐이다. 이렇게 편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에 시대 기류가 편승됐단 이유 하나 만으로 극찬할 필요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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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북한 군을 언제까지 터미네이터처럼 묘사할 건지, 지금은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서 20년이 흘렀다. 걸어서 군사 분계선을 넘는 시대에 언제까지 이렇게 유치한 갈등을 봐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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