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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Aug 29. 2018

지구 멸망의 날,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산책하는 침략자』

실종됐던 남편 신지(마츠다 류헤이)는 기억을 잃은 채 돌아와, 아내 나루미(나가사와 마사미)에게 자신을 신지가 아닌 외계인이라 소개한다. 비슷한 시각 일본의 한 가정집에선 일가족 모두가 살해당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이를 취재하러 온 기자 사쿠라이(하세가와 히로키)는 자신을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소년 아마노(다카스기 마히로)를 만난다. 아마노는 자신의 목적이 지구를 침략하는 것이며, 일가족 살인 사건은 그 집의 막내딸이자 자신과 같은 외계인인 아키라(츠네마츠 유리)의 소행임을 밝힌다.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인간에게서 ‘개념’을 빼앗은 뒤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믿지 않던 나루미와 사쿠라이는 개념을 빼앗긴 사람들이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세상이 아비규환의 상태로 변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그리고 마침내 외계인들의 침략이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과연 인류는 이들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좌)과 봉준호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는 작년 70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이다. 기요시 감독은 가와세 나오미,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시네아스트로 알려져 있다. 유령과 외계인, 도플갱어와 같이 초현실주의적이고 미스터리 소재를 영화 형식과 연결지어 구축하는 데 능통하다. 그래서 기요시의 작품은 어떤 면에선 메타 영화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국내에는 봉준호 감독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기요시 감독의 영화가 국내에 개봉하면, 봉 감독은 직접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등 자신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소개해 오고 있다. 때문에 기요시 감독의 영화를 보면 봉 감독 작품과 유사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한 장면 안에 비극과 희극의 카타르시스가 동시에 담겨있는 경우다. 



 봉 감독의 영화 『괴물』 속 장례식 장면을 떠올려 보자. 이때 카메라는 딸의 죽음이란 비극적인 상황에, 슬퍼하는 가족들의 우스꽝스런 몸짓을 그대로 담아낸다. 장례식이란 비애의 공간 안에 유머 코드가 공존하고 있는 이 한 순간이 그 예시다. 이는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격언인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처럼, 삶의 진실은 무엇이 진정 희극이고 비극인지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산책하는 침략자』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외계인들이 인간에게 개념을 빼앗는 과정에서다. 외계인들은 ‘일이란 무엇입니까?’ 혹은 ‘가족이란 무엇입니까?’와 같은 질문을 하고, 이에 대답 한 사람은 머릿속에서 그 개념이 지워져버린다. 때문에 일의 개념을 빼앗긴 자는 놀이에만 매진하고, 가족의 개념을 뺏긴 사람은 가족을 냉담하게 대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있다. 바로 개념을 빼앗긴 사람들이 모두 불행해지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소유의 개념을 빼앗긴 사람은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벗어 던지고 사회에 적응한다. 영화는 이때 ‘우리가 학습한 개념과 생각들이 우리에게 진정 이로운가?’라는 당혹스런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카메라가 외계인의 정면을 마주보며 관객을 답변해야 할 위치에 놓는다. 이야기와 연출기법이 어우러진 이 난처한 질문의 연속은 『산책하는 침략자』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돈 시겔 감독의 <신체 강탈자>

이 영화는 외계인의 침략을 소재로 한 SF영화이면서 사랑을 소재로 한 멜로드라마다. 외계인의 공격과 그들이 우리 주변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돈 시겔 감독의 『신체강탈자의 침입』을 모티브로 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의 멸망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우리가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을 때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는지, 혹은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묻는다.

홍상수 감독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산책하는 침략자』는 그 희망을 사랑으로 본다. 바로 나루미와 신지 부부의 이야기로 말이다. 기억을 잃고 자신을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신지를 나루미는 쉽게 떠나지 못한다. 여전히 보이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신지의 모습을 한 외계인 또한 그런 나루미의 헌신적인 태도에 혼란스러워 하며 침략을 주저한다. 또한 그는 사랑의 개념을 빼앗지 못한다. 여기서 영화는 사랑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때로는 상대를 위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이란 믿음을 보인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됐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우리가 알던 사람을 매순간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할 수 있을까? 


『산책하는 침략자』는 사랑이 지속을 담보로 한 관계가 아니라 순간의 연속임을 역설하는 영화로 볼 수 있다. 서로에게 매 순간 사랑을 선언하고 그 사랑을 실천해야만 사랑은 유지될 수 있고, 그것이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 하기에, 홍상수 감독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랑하는 당신을 나는 모르니 영영 존대합니다’ 김혜리 영화평론가의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 관한 한줄 평이 떠오르는 영화.  현재 VOD 서비스와 함께 상영 중이다.


ps.8월 13일 있었던 정한석 평론가의 GV를 바탕으로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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