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의 인스턴트가 아닐까
요새 서점들을 다니면서 부쩍 깨닫는 사실은 빨간머리 앤, 보노보노, 푸우 등 기존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표지 주인공으로 삼는 감성 에세이가 많아졌단 점이다. '저작권은 어떻게 협의 봤으려나' 하는 질문이 먼저 떠오르는 나지만. 사실 이 책의 내용들은 기존 자기계발서나 감성 에세이가 담고 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의 너가 불행한 건 너의 탓이 아니며 누구나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기에 우리 다같이 괜찮아 지자. 요약하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책들은 일종의 감수성 인스턴트 책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감성의 인스턴트냐면 읽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 책을 소유했을 때의 나를 단번에 드러내줄 수 있는 욕망을 정말 잘 건드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굳이 묶어서 이야기 하긴 싫지만 이런 감성의 인스턴트 북들은 책을 보게 될 주 독자층이 유년시절에 봤을 법한 만화 주인공을 화자로 대신 내세우면서, 기성 여행 에세이나 SNS의 감성글귀들의 내용을 유사하게 반복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내가 기억하기에 이런 만화들이 어린시절 내게 크게 위로를 던져준 적이 별로 없었단 점이다. 예컨대 <빨간머리 앤>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넷플릭스 드라마로 재구성한 시리즈가 워낙 어둡기도 했지만, <빨간머리 앤>을 보고 깨닫는 사실은 위로라기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질서가 너무나 잔인하면서 험난하고 어둡지만, 그 속에서도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고 생의 의지를 지켜 나가야 한다는 주체성을 부각시키는 점이 더욱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보노보노>나 <곰돌이 푸우>는 일정 부분 그런 위로의 감정을 어느정도 공유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유년시절에 본 만화 캐릭터를 기억할 때 찾아드는 일종의 향수와 하루에도 수천 수만가지씩 탄생하는 감성 에세이 문장이 맞아 탄생한 일종의 기획상품 게 아닐까란 게 요지다.
특히 독자에게 이 책들은 기존 독자들이 책을 읽고 소유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에서 나아가, 이 책을 읽는 나를 드러내는 용도로 쓰기 정말 좋다. 즉 SNS와 같이 공개된 공간 안에 나를 보여줄 때, 어느정도의 감수성과 지성을 지녔는지를 알려 줄 수 있는 시각적 기호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여행 에세이나 정말 잘팔리는 00품격류 책들은 단순히 텍스트에만 의지해 이런 양식을 대중화 시켰다면, 이제는 주 소비층의 향수를 자극해 구매자가 이 책을 구입하면 동심과 감수성을 되찾게 될 거란 유혹이 담겨있어 보인다. 사실 이런 말랑말랑한 글을 쓰는 재주도, 좋아할 맘도 없는 나는 좀 낯선 느낌이 크다. 한 때 스누피 주제로 쓰면 잘팔리겠다 싶었지만, 쓰면서도 ' 아 이건 내 글이 아니야 ' 란 죄책감에 크게 좌절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글을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또 이미 50년 전에 움베르트 에코가 내기도 했다. 그리고 확실한 건 잘팔리는 책은 작가의 잘쓴 글 하나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종이 책을 소유한다는 건 더이상 지성을 축적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나의 이미지를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초점을 맞춘 기호의 역할로 변모해 가는 추세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종이 책의 미래는 여기에 달려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