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왜 죄인이 되야만 하는가
어렸을 적 사물함에 넣어둔 물건이 사라진 사실을 담임 선생님께 알렸다가 되려 혼났던 적이 많다. mp3나 옷, 혹은 그와 비슷한 나름 고가의 물건들이었고 너무나 황당한 경험으로 남아 있기에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정황상 누군가가 훔쳐간 게 분명한데 돌아오는 대답은 이상하게도 항상 한결같았다. '네가 관리를 소홀히 해서 그래', '훔쳐갈 만했네'와 같은 대답들. 그땐 정말 잘못이 내게 있는 줄 알았다.
물론 더 이상은 그게 내 잘못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안다. 그렇지만 선생들이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위와 같은 반응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거나 혹은 나태함에 그치지만은 않는 것 같다. 매일 마주하는 뉴스 속 살인과 강간, 폭력과 같은 파장이 큰 사건의 기사 속 헤드라인에는 가해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연민하고 동정하는 태도가 만연해있다.
'왜 안 만나줘', '우울증 환자' , '심신 미약' , '음주 운전', '불친절해서'. 이런 가해자 중심 시각으로 쓰인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을 볼 때마다 한국 언론들이 저널리즘 윤리를 얼마나 제쳐두는지 실감한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보자. 이 사건은 심신 미약의 우울증 환자가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사실 이전에 더 큰 문제가 있다. 피해자가 이미 1차 신고를 한 후 경찰에 격리조치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떠난 뒤 가해자가 돌아와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즉 가해자에 관한 수색과 보다 확실한 격리 조치가 있었더라면 피해자는 분명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기사의 헤드라인은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할까. 특히나 몇몇 기자들은 왜 항상 가해자 입장에서 살인과 폭력에 그럴만한 이유를 덧 씌워주는가. 그리고 종업원이 불친절한 게 죽을만한 이유가 될까.
점차 확신이 서는 건 이런 은밀하게 내재된 가해자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결국 피해자와 주변인들에게 "당할만했네"라는 알리바이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한국이 피해자를 죄인으로 만드는 시스템은 바로 이런 뉴스 기사의 제목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