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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Oct 20. 2018

'언팔'이 두려운 사람들

스콧 스토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사실 저는 활자 중독과 주의력 결핍이 결합된 인간이라 SNS를 꽤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페이스북,트위터 등 전방위에 걸쳐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지요. 물론 그렇게 열심히 sns를 하다 보면 피로감이 금새 찾아들어 제가 활동한 모든 내역을 지우고 싶은 욕망이 생긴답니다.

 

 어쩌면 인스타그램의 '인스타 스토리' 기능이 탄생한 맥락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제가 올린 사진이나 글들은 지워봐야 아쉬운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 크게 문제될 사항은 없겠죠. 하지만 문제는 역시 사람간의 관계에서부터 오는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해 정치적으로나 민감한 주제들에 관해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사람과 sns 속 관계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란 점 말입니다.  여기에 프로젝트나 한시적인 모임을 위해 만들어진 카카오톡 '단톡방' 처럼 이미 용무가 끝난 대화방에 장승처럼 남아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이 주제에 관해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이런 옹졸한 고민이 저만이 안고 있던 문제가 아니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특히 SNS상의 관계를 끊을 때 우리가 주저하게 되는 이유가 뭔지, 또 나가고 싶거나 더이상 용무가 불필요한 단톡방을 정리 못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거든요.


 후자의 경우 굳이 나갈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한 뒤, 도망치듯 나가는 사람들을 여럿 봐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어요. "대체 왜 저렇게 미안해 하실까" 싶었지만 역시 나간 자는 답이 없었지만요...


 생각해보니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첫째는 온라인 상 관계를 끊었던 사람과 재회하거나, 혹은 그들에게 따로 연락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큰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 회사, 혈연, 지연과 같이 그와 공통적으로 엮여있는 인적 관계로부터 오는 두려움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말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렇듯 SNS 상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정리하거나 혹은 무심하게 끊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집단으로부터 아무런 해가 되거나 항의 의사를 받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역설적으로 상대방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나봐" 라던지 , "어차피 더 할말도 없고 어색했는데 다행이다."라는 반응처럼 오히려 나간 사람의 마음을 되려 이해해주는 경우가 더욱 많았고, 그들의 행동을 부러워 하거나 관계의 단절 원인을 외려 자신에게서 찾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는 불안과함께 살아간다> 속 인상 깊었던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터넷 세상 속 관계 단절은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을 야기하는 듯 보입니다. 여기서 겪는 두 증상은 한 사람 혹은 두 세명 이상의 작은 집단으로 부터 분리돼 나오는 감정이기에 일종의 분리 불안 장애의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의 저자인 스콧 스토셀은 <불안의 문제>라는 책을 인용해 분리 불안 증세를 다음과 같이  진짜 위험에 대한 "타고난 준비성이 퇴화된 흔적"이라 말했어요. 쉽게 말해 이런 두려움과 공포는 우리가 실제로 두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공포보다, 우리가 그 상황을 미리 예견했을 때 피어 오르는 감정들이 우리를 두려움과 불안으로 이끌기 때문이 아닐까란 말입니다.


 하지만 그 예견된 공포의 감정이 크다고 해서 우리가 취향과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점점 쌓여가는 데이터의 유물로 지어진 박물관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을지는 여전히 고민거리가 되는 것 같네요. 물론 제 생각은 일단 정리해야 할까란 고민이 생겼다면, 정리하는 게 맞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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