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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Nov 30. 2018

2018년 사랑을 가르쳐준 영화들

2018년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영화를 보는 데 집중할 수 없는 한 해였다. 그럼에도 너무나 좋은 영화들을 만나, 어느때 보다 영화가 알려줄 수 있는 단어가 오직 감각과 사랑 뿐이란 생각을 확인한 해이기도 하다.

올해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이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바르다 감독은 90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진가 JR과 함께 구석진 프랑스 소도시로 떠난다.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대형 사진으로 인화해 그들의 집과 일터를 비롯한 건물 벽면에 붙이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영화가 전해준 가장 아름다운 전경은 바로 이 작업의 가치에 있다. 수십 년째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인 마을에 바르다 감독은 홀로 남아 투쟁하는 할머니를 찾아가 대문 앞에 그의 얼굴이 담긴 대형 사진을 붙인다. 이 모습을 본 할머니는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바르다 감독, JR과 포옹을 나눈다. 철거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지만 우직하게 그 자리를 버티고 있던 할머니의 역사,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여져있는 장소와 얼굴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자 영화와 예술의 역할이 아닐까.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개들의 섬』 역시 아이와 개의 유대감을 보여주며 작고 소박한 것들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영화였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답게 쇼트 하나하나가 정교한 황금비율로 배치돼있어 활동사진이란 영화의 또 다른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또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무언가를 뚝심 있게 이야기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 점을 누구보다 지지해주고 싶다.


관계로부터 오는 불안을 다양한 양상으로 구체화한 영화들도 눈에 띄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은 가족이란 작은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긴장과 불신, 애도의 감정을 오컬트 호러 영화로 묘사한 정말 무시무시한 영화다. 이 영화가 지닌 메타적인 가치 또한 조명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상수 감독의 『풀잎들』은 카페라는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 간의 대화를 관찰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스스로와 타인을 판단하는지,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와 같은 당혹스런 질문을 던진다. 물론 홍상수 영화가 매혹적인 점은 언어로 풀어낼 수 없는, 오직 영화만이 가능한 단상들을 보여준다는 데 매혹적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레드』는 감각적인 음악과 의상, 연기에 감탄했지만 이 영화는 연인 사이에 존재하는 가학과 피학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사랑에 동등한 관계라는 건 순간일 뿐 관계의 유지를 위해선 결국 갑과 을의 위치를 서로가 무한히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도발적인 영화였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레디 플레이어 원』 과 『더 포스트』는 규모와 소재가 확연히 다른 성격의 영화들이면서 모험가이자 휴머니스트인 거장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세기 대중문화를 비롯해 오타쿠 문화로 통칭되는 서브컬처 장르를 우정이란 감정으로 끌어안는 영화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부터 『건담』, 『오버워치』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주의 향연이 이를 대변한다. 『더 포스트』는 1971년, 워싱턴 포스트지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베트남 전쟁을 유지하기 위해 은폐해온 진실을 폭로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진정 필요한 덕목은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나 끝없는 자기 검열이 아니라, 바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려는 태도다. 『더 포스트』의 미덕은 이를 납득토록 하는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를 비롯한 배우들 간의 연기와 조화에 매혹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와 『카우보이의 노래』는 미국이란 나라의 오늘과 과거, 한 공간 안에 존재하는 시간과 사람들의 면면을 차분히 응시하는 영화들이다.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찰스 디킨스의 강연으로 시작해 토론과 공연, 교육과 행정 서비스 등 4시간이란 긴 상영시간 동안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한다. 오늘날 도서관이란 장소는 단순히 책을 빌려 읽는 공간이 아닌 사람들을 모이게끔 하고 대화와 발전을 함께 모색하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하는 공간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코엔 형제가 연출한 『카우보이의 노래』는 미국 개척시대의 서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6개의 이야기가 담긴 옴니버스 영화다. 이 영화가 서부를 묘사하는 태도는 화마다 달라지는데, 이 황량한 세계가 유쾌하면서도 낭만적인 장소였다가도 때론 냉소적이고 비극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공간임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나 6번째 에피소드가 끝나고 난 뒤 생기는 공허한 감정을 여러분도 느꼈으면 좋겠다.
리스트를 정리해보니 불확실한 관계와 미래로부터 오는 불안, 혹은 괴로웠던 기억들을 영화로 위로받은 한 해였던 것 같다. 내게는 이 시기가 꽤나 오래 지속될 것 같아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영화로부터 위로받는 일은 지속될 것이다.


(순위는 무순입니당!)
2018 개봉영화 Best
1 개들의 섬
2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3 더 포스트
4 레디 플레이어 원
5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6 소공녀
7 유전
8 카우보이의 노래
9 풀잎들
10 팬텀 스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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