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는 없어요> 매거진 연재를 시작하면서
한 해 동안 극장에 걸리는 영화 편 수가 얼마나 될지 상상해보신 적 있나요? 2016년 말을 기준으로 하면 국내 영화관 스크린 수는 무려 2600개에 달합니다. 그중 극장 개봉 영화는 약 1500편을 넘어선다고 하고요.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감이 잘 안 잡히시죠? 외국의 사례를 볼까요? 미국의 경우 스크린 수를 4만 개 이상 보유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연간 개봉 편 수는 국내의 절반도 미치지 못합니다. 예술의 고장으로 알려진 프랑스도 마찬가지예요. 6천 개 이상의 스크린을 보유했음에도 600편 정도의 영화만이 관객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영광을 누립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다양한 영화를 많이 접할 수 있는 소위 복 받은 관객이라 여길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만큼 국내 영화산업은 치열한 경쟁구도 안에 놓여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영화는 낭만 가득한 하나의 예술이야'라는 찬사를 보내더라도 영화는 어디까지나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투자의 산물입니다. 손해를 본다면 더 이상 태어날 리 없죠. 한 해 동안 1500편의 영화들이 개봉하더라도 상영 수와 개봉 시기가 천차만별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까운 극장을 찾았을 때 실제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일수록 홍보 마케팅 비용도 더 커지기 때문이죠. TV 광고와 영화 소개 프로그램부터 최근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과 영화 배급사가 협업해 내놓는 영화 리뷰까지, 규모가 큰 영화들일수록 이렇게 개봉 전부터 우리의 손과 눈이 닿는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관객의 선택은 진정한 의미의 선택이 아닐지 모릅니다. 이미 극장을 찾기 전부터 우리는 '그' 영화들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죠. 또 하루에도 2~3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씨네필들과 달리, 대부분 관객들의 영화 관람 횟수는 평균적으로 1년에 4편에서 5편 정 도입니다. 극장을 드물게 찾는 사람들일수록 자신들이 내린 결정이 틀리는 걸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때문에 대부분 관객들이 익숙하면서 실망할 확률이 낮은 영화를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유일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 주변엔 소위 예술 영화, 다양성 영화, 독립 영화라 불리는 작품들을 굳이 보기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하루를 포기할 각오가 돼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인지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CGV의 경우 한 해 개봉작 1500편 중에 다양성영화, 즉 아트하우스 상영작의 비중이 약 30% 정도입니다. 그런데 실제 관객수 비중은 4% 밖에 되지 않습니다. 96%의 관객들은 극장에 오기 전부터 이미 다양성 영화라 불리는 작품들을 자신들의 선택지에서 배제하고 시작하는 셈입니다.
반대로 4%의 관객들이 30%의 다양성 영화를 떠받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4%들은 어떤 이유로 30%의 영화를 보러 올까요? 그리고 그들이 찾는 작품들 속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존재하는 걸까요. 그 질문이 바로 <예술 영화는 없어요> 매거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어떤 글을 쓰게 될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습니다. 한 가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 매거진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 경험에 의존해 쓰게 될 거란 사실입니다. 유년시절 처음 극장에 들어서서 스크린을 마주한 기억부터,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소중한 영화들과 정말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말입니다. 이 이야기들을 풀어놓음으로써 96%의 관객들이 4%의 관객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을 열어놓고 싶은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