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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Mar 01. 2019

사람은 죽을 수도 있구나

최초의 영화를 기억하면서

 

 자신이 처음 극장에 가서 본 영화를 얼마나 기억하고 계신가요.  저는 방금 본 영화 줄거리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태어나 처음 본 영화의 어느 한 장면에 관해선 단편적이지만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0년 1월에 개봉한 장문일 감독의 <행복한 장의사>는 제가 극장에 가서 본 첫 번째 영화로 기억합니다. 대체 7살 아이가 무슨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고 싶어 했는지, 또 극장 매표소 직원은 왜 절 들여보내 줬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얼마 전 부모님과 대화를 하며 알게 됐는데, 제가 우연히 공중파 방송의 영화 소개 프로를 보면서 <행복한 장의사>의 예고를 보게 됐다는 점과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부모님께 갖은 떼를 부려 기어코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 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시절 인기 스타였던 임창정이 나온다는 사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이 영화에서 기억하는 건 단 한 장면뿐입니다. 사실 이 장면이 있는지조차 확실하진 않지만 말이에요. 불이 꺼진 극장 안에 스크린에 빛이 반사됐고 마침내 영화가 시작됐습니다. 허름한 방 한가운데 김창완 배우가 나체로 서 있고 그리곤 갑자기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그것이 제가 영화와 조우한 최초의 순간이자 아직까지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어떤 이미지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생을 포기하기 위해 아등바등 움직이고 있었고,  힘껏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저 육체의 활동이 아직까지 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끔 놀라곤 합니다.


 참고로 전 이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김창완 배우가 자살을 시도한 장면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아서는 전혀 아니었고 무슨 이유에선지 영화가 금방 지겨워진 탓에, 어머니께 집에 가자 닦달했기 때문이죠. 그 이후론 이 영화를 아직까지 본 적은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인 지금도 자살에 관한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도 저는 <행복한 장의사> 속 김창완 배우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더욱 확고해지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를 본다는 건 단순히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전까지 내가 전혀 보지 못했던 어떤 이미지에 감응하게 되는 일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사실도요. 한 편의 영화가 시작해서 끝나기까지 우리는 카메라가 비추는 한 세계의 등장과 소멸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다가 갑작스럽게 중단하는 일은, 영화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하나의 결단이란 점에서 어쩌면 영화와 죽음은 긴밀히 연결돼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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